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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소개

최용덕(崔用德)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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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1-25 10:01 조회6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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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8. 09. 19 ~ 1969. 08. 15   서울 성북동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1922년 의열단에 참가하여 김상옥의사 의거 지원
    1932년 4월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장
    1945년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장


무장독립투쟁을 견지한 군인,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역  


“우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조국의 광복을 이끈 창석

1898년 11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난 최 장군은 1910년 일본의 국권 침탈을 계기로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해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의 길을 걷게 돼요. 


졸업 후 1920년 북경의 보정항공학교에서 비행 훈련을 받고 조종사로 복무하게 된 최 장군은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 앞서 1925년 중국 항공대의 창설멤버로 추대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어요. 


최 장군을 비롯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중국군에 합류한 것은 중국이 당시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과 싸울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죠. 

 

중국군에 복무하며 혁혁한 공을 세우던 최 장군은 더딘 조국 광복의 고삐를 죄고자, 1940년 임시정부 광복군총사령부 참모를 거쳐 1945년 광복 때까지 임시정부 항공건설위원회 주임,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광복 선봉장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부활호' 제작

“기어코 우리들의 손으로, 우리들의 뇌에서 만들어져 나올 비행기를 자체 제작하고 싶다. 우리들의 하늘을 우리가 만든 우리들의 비행기로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이 얼마나 비통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6?25전쟁 당시 공군참모총장으로 있었던 최용덕 장군은 입버릇처럼 “우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비행기 제작이야말로 우리나라 공군의 역량을 강화하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이에 최 장군은 항공창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비행기 제작에 돌입합니다.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1953년에 이르러 우리나라 최초의 경비행기 ‘부활호’가 성공리에 창공을 가르게 됐습니다. 


비행기의 자체 제작 성공에 크게 기뻐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부활(復活)'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친필 휘호를 내리는 등 대한민국 공군 역사의 쾌거로 기록돼 있습니다.


1969년 8월 15일 광복절에 영면하기 까지 영원한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

최 장군은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50세의 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3대 공군사관학교장 재임 중 김포지구 경비사령부를 편성해 김포기지를 방어했습니다.


또 1952년 12월 1일 제 2대 공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한 후 휴전될 때까지 공군의 항공작전을 총괄했습니다.

1955년 공군 중장으로 퇴임한 후에도 채신부 장관, 중화민국 대사를 지내며 조국에 헌신했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공로훈장, 을지무공훈장,충무무공춘장 등을 추서 받았습니다.


평생을 오롯이 조국을 위해 살아온 최 장군이 영면에 든 것은 1969년 8월 15일, 광복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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