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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환(曺京煥)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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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1-01 10:40 조회5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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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6. 2. 14 ~ 1908. 12. 19   광주

●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1907년 함평에서 김태원과 함께 거의하여 함평성의 일군을 급습
     1908년 김태원 전사 후 의병장으로 추대, 호남창의대장으로 활약,  전해산 의진과 합진하여 일군과 교전 

하늘이 거듭 푸르고 달빛 다시 밝으니 못된 귀식 되어서라도 왜적을 섬멸하리.

  섬나라 오랑캐를 멸하지 않는다면 죽어 혼이라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 열혈 정년으로의 성장 

조경환은 10대를 전후하여 10여 년간 유학에 정진하며 효성과 우애로움을 갖춘 박학다재한 청년이었다. 이후 그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산천지세를 파악하며 조선 정국을 살피는 과정에서 뜻이 크고 기개가 넘치는 우국지사로 성장하였다. 결국 그는 약 7년 동안의 전국 순회를 마치고 귀향한 후 누란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기 위해 서당을 개설하여 훈장으로 활동한 것이다. 그가 후학의 교도에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 그러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 의병에 투신하여 구국의 대열에 앞장서다.  

당시 용진산(聳珍山)에서 모여 제휴하기로 결정하고서 의병의 전력 강화에 힘쓴 끝에 200여 명의 의진으로 재편할 수 있었다. 전열을 정비한 조경환과 전수용은 유격전술에 적합한 형태로 부대를 운용하기 위해 두 개의 의진으로 편성하였다. 이 때 1908 음력 7월경, 전수용은 이무렵부터  해산(海山)’이라 자호함으로써 전해산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들은 협동작전이 가능하도록 서로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며 활동하였다. 평소에는 의진을 나누어 운용하고, 일본 군경과 전투할 때에는 협동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일본 군경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조경환 의병장이 이끄는 독자적인 의병부대가 등장한 것이다.

▲불굴의 항일투쟁과 나라 위한 수국 - 일본군 14연대의 996발의 총탄 속에서도 결사 항전

조경환 의진은 1백명 ~ 2백명 내외의 군세를 형성하여 전라남도 광주 함평 영광 장성 담양 등지를 무대로 활동하였다.1908년 설날 담양 무동촌 전투에서 일본군 하야시(林周助)가 빼앗긴 총기로 파악되었다. 당시 일본군은 두시간 동안의 격전 과정에서 996발의 탄환을 소모한 외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조경환 의병장은 1907년 음력 12월에 의병에 투신하여 항일투쟁을 벌이다 1909110일 전사,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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