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4. ~1905.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한 최초의 자결순국
● 1901년 영국벨지움양국주차공사관 3등 참서관
1904년 주영 서리공사
1905년 주영공사관 철수를 통보 받자 영국 정부와
제외국(諸外國) 공사들을 대상으로 외교활동 전개
● 생애 및 활동사항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한 최초의 자결순국
1892년 관립영어학교(官立英語學校)를 졸업하였다. 1894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1897년 한성부주사가 되고, 1899년 관립영어학교 교관으로 전출하였다. 1901년 영국·벨기에 주차공사관 3등참사관(駐箚公使館三等參事官)에 임명되어 영국 런던으로 부임하였다.
◇ 구국 외교활동
1903년에는 통훈대부에서 통정대부로 가자(加資) 되었고, 1904년 주영공사 민영돈(閔泳敦)의 귀국으로 서리공사에 임명되어 대영 외교의 모든 책임을 지고 활약하였다. 1904년 2월 한일의정서가 강제 체결되어 한국의 독립이 흔들리자, 영국 및 여러 외국과 유리한 입장에서 외교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해 8월 제1차 한일협약이 강제로 성립되어 일제가 한국의 주권을 잠식하자, 각 국에 주재하는 우리 공사들에게 전신으로 연락, 한국 외교를 위하여 재외사절단이 공동 항쟁을 하도록 토의하였다. 또한 영일동맹의 부당함을 들어 영국 정부에 항의 하였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주영 한국공사관을 폐쇄하는 등 영일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이 한국 정부의 주권을 강탈할 음모를 획책하자 이를 개탄하여 1905년 5월 12일 음독자살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후에 국내에 알려져 을사조약 때는 민영환(閔泳煥)·조병세(趙秉世)등이 순국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원통함을 참지 못해 자살하는 이가 속출하였다. 1962년 정부는 구국외교를 펼치다 순국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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