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연도
유도발 柳道發,1832.06.28~1910.10.26.
유신영 柳臣榮,1853.06.17~1919.03.03.
◆ 훈 격
유도발 柳道發 : 건국훈장 독립장 (1962)
유신영 柳臣榮 : 건국훈장 애국장 (1991)
◆ 주요공적
대를 이어 죽음으로 항거한 대한의 선비 유도발·유신영 부자
◆ 공적상세
□ 유도발·유신영 선생 부자는 경술국치와 광무황제 고종의 서거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아버지는 나라에 대해 의리를 실천했고 아들은 나라와 아버지에 대해 충효를 실천.
○ 두 분의 자결 순절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선 항일투쟁의 일환이었으며, 그 죽음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남은 이들의 항일정신을 일깨워 독립운동에 나서게 만드는 울림이었음.
□ 부친 유도발 선생은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이 체결되자 일제의 지배에 놓인
세상을 차마 살아갈 수 없다며 1910년 11월 11일 단식에 돌입.
○ 1910년 11월 27일 단식 17일째, 선생은 향탕으로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고 죽음을 맞이함.
그 죽음은 일제의 강제병합에 대한 강력한 항거이자, 사람들에게 항일정신을 일깨우는 울림
이었음.
□ 아들 유신영 선생은 선대의 가업을 철저히 익히고, 항일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학문과 사상을
넓히고 1895년 유인석 의진과 1896년 권세연 의진에 참여하여 적극적인 의병활동 전개.
○ 1919년 1월 광무황제(고종)가 서거하자 친일파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는 나이가 많아 일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마땅히 목숨을 바쳐 나라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면서
선생이 할 수 있는 투쟁방법은 죽음 뿐이라며 1919년 3월 3일 독약을 마시고 자결.
○ 그의 죽음은 대를 이어 일제에 투쟁하고, 남은 이들에게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한 것임.
□ 정부에서는 두 분 공훈을 기리기 위해 유도발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유신영
선생에게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