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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경남도민일보]"하동 옥종서 항일투사 104명 전사" 첫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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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항단연 작성일13-12-12 09:15 조회8,9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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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옥종서 항일투사 104명 전사" 첫 확인
 
정재상 향토사연구위원장 <진중일지> 등 3개 문건서 기록 찾아
데스크승인 2013.12.12 허귀용 기자 | enaga@idomin.com
을사늑약(1905년) 이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맹활약했던 항일투사 104명이 하동군 옥종면에서 전사(戰死)했다는 문건이 향토사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문건을 공개한 정재상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이번 자료는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인 <폭도에 관한 편책>과 LH 토지주택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진중일지> 그리고 당시 일본군 보병 조선 주차군 사령부가 엮은 <조선 폭도 토벌지>의 문건에서 기록을 찾았다"고 11일 밝혔다.
문건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일본 경찰과 일본군 보병이 작성한 자료로서, 항일투사들의 항쟁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건에는 경남 창의대 박동의(朴東義·산청), 류명국(柳明國·하동)은 의진 소속으로 1908년 5월부터 10월 사이 일본군의 '지리산 대 토벌 작전'으로 희생된 것으로 돼 있다.
항일투사 104명이 하동군 옥종면에서 전사했다는 문건이 지역 향토사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정재상
또한, 80여 명이 융희2년(1908년) 6월 5일 새벽 1시 30분 하동 동북 약 50리 부근 옥종면 월횡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의병 51명이 전사하고 15명이 부상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보다 앞선 5월 22일에는 의병 10여 명이 하동 동북방 옥종면 월횡 삼기(三岐)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4명이 전사했다고 돼 있다.
7월 10일에는 하동 동북 옥종면 청수동에서 의병 약 40명이 일본군과 교전하다 13명이 전사했으며, 7월 17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의병 약 40명이 1시간 30분간 교전 끝에 9명이 전사했다.
18일에는 옥종면 회신에서 의병 약 30명이 일본군과 교전하다 9명이 전사했으며, 이어 28일에는 옥종면 월횡에서 손마생(孫馬生·하동) 의병장이 지휘하는 의병 약 20명이 일본군과 교전하다 7명이 전사했다.
8월 6일에는 하동 북방 60리 지점(옥종면 청수)에서 의병 약 30명이 일본군과 교전하다 3명이 전사했고, 24일에는 옥종면 궁항에서 약 30명이 일본군과 교전하다 4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10월 19일에는 의병장 이만용(李萬用·이상수·사천, 류명국 의병장의 부장 출신)이 지휘하는 십수 명의 의병이 옥종면 월횡 백곡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4명이 전사했다는 내용이 이들 문건에 담겨 있다.
정재상 연구위원장은 "하동군 옥종면에서 교전하다 104명이 전사한 기록은 전국적으로 볼 때 면 단위에서는 가장 많은 의병이 희생된 기록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