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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매일경제]친일파 의복, 문화재 등록이 문제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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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항단연 작성일13-08-14 11:28 조회7,7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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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지난 6월 21일 문화재청(청장 변영섭)은 ‘민철훈 대례복 일습’, ‘윤웅렬 일가 유물’, ‘민복기 검사·변호사 법복’, ‘백선엽 군복’, 등 의복과 유물 11건 76점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하지만 민철훈과 윤웅렬-윤치호 부자, 민복기, 백선엽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거나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들로, 시민단체와 항일·독립운동가단체들은 이들 의복의 문화재 등록은 항일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등 8개 항일·독립운동가단체들은 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들은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의 물품이 문화재로 등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외치며 욱일승천기를 두른 백선엽의 마네킹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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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8개 항일·독립운동가단체들이 친일파 의복의 문화재 등록을 반대하고 있다.
 
 
문제가 된 의복은 민철훈 대례복과 윤웅렬 일가의 유물, 민복기 검사복과 변호사복, 백선엽 군복 등 근대 의복 11건이다.

이중 민철훈의 대례복은 광무 4년(1900) 칙령 제15호 문관 대례복 제식에 따른 칙임관 1등 대례복이다. 1901년 제작했으며, 한국자수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이 옷에 대해 문화재청은 무궁화 무늬를 최초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복식사적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또한 정장 예복인 민철훈의 모닝코트는 1900년대 의상으로 일제 강점기 서구식 예복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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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철훈의 대례복 일습(1901)과 모닝코트(1900년대)


윤웅렬 일가 유물은 구한말의 무인 가문이었던 윤웅렬과 부인 전주 이씨, 아들 윤치호 등 그 일가가 소장하거나 착용한 교지, 유서, 마패, 사명기와 복식류 등 69점이다.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이들 유물 중 복식류 56점은 조선과 대한제국 시기 각종 의제개혁에 맞추어 제작하고 착용한 전통 또는 서구식 문무관복을 비롯해 여성 예복과 모자, 신발 등이다. 구한말과 대한제국 시기 명문가의 생활사와 복식제도의 변화사는 물론 직물의 형태와 구성 분야의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한다.

‘검사 법복’은 민복기가 대법원장 임명 전인 1953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또는 1955~1956년 검찰총장 재직 시절 착용한 검사법복으로, 해방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검사 법복이다. 1956년 제작된 이 의복은 현재 대법원 법원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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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렬 일가 유물


‘백선엽 군복’은 백선엽이 착용한 하예복, 동정복, 동만찬복, 동근무복과 트렌치코트로 대한민국 장군복의 유형별의 복식 형태를 알 수 있다. 또 계절이나 착용 목적에 따른 형태 비교도 할 수 있어, 현대 군사복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한다. 1958년~1960년경 제작됐으며 현재 전쟁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밝힌 이들의 문화재 등록 이유는 “의생활 분야에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큰 유물이며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재청은 앞으로 등록 예고되는 의생활 유물에 대하여 30일간의 등록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거쳐 문화재로 등록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항일독립운동가 단체들은 “보존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소장처나 관련 박물관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굳이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 명분이 무엇이냐”고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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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의 동정복(1958~1960년경)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금기숙 교수는 MK패션에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무명옷과 친일파 이완용의 복식의 가치를 가격으로 따진다면 분명 차이는 있다”고 말하며, “예전에 법관복을 디자인할 때 검사 법복, 판사 법복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친일파의 의복이라도 일제 침략시대를 배우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다만 문화재로 등록되려면 지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상태가 훌륭한지, 사료의 역할을 하는지, 아름다운지, 그리고 역사적 의의가 있는지 등 항목별로 섬세하게 점수를 매겨야 한다. 반발하는 국민 정서를 무시할 순 없으므로 그중 가치를 매겨 순차적으로 혹은 선별적으로 등록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문화재위원들이 이와 관련한 명확한 판단기준에 따라 일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 조언했다.

현재 문화재청에는 ‘친일파 의복을 문화재청 등록 절대 반대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 문화재청인가’ 등 이 옷들의 문화재 등록을 반대하는 항의글이 올라와 있지만 해당 글을 클릭하면 삭제돼 읽을 수 없는 상태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담당자는 “등록 예고라고 해서 심의가 다 통과하는 것은 아니며 결과는 심의를 거쳐 봐야 알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이들에 대한 최종 심의는 오늘(13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다. 복식사적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역사 및 국민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분과위원들이 참석하는 최종 심의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뉴시스,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