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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오마이뉴스] 2008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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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23 18:25 조회9,6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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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 김성숙 평전 55회]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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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국가보훈처) 2008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국가보훈처)   ⓒ 박종근 


정부는 2008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운암 김성숙 선생을 선정하고 추모하였다.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행사이다. 다음은 정부가 기술한 자료이다.

운암 김성숙(雲巖 金星淑)

 법 명 : 태허(太虛)
 아 호 : 운암(雲巖), 본관은 상산
 생년월일 : 1898년 평북 철산 생. 1969년 4월 12일 별세
 이명(異名): 창숙(昌淑), 성암(星巖), 규광(奎光)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2008년 '4월의 독립 운동가'로 선정(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

 운암 김성숙 선생은 


ㆍ김성숙은 님 웨일즈 『아리랑』에 나오는 금강산에서 온 붉은승려 '김충창'으로 묘사되고 주인공인 김산(장지락)의 정신적 스승이다.
 ㆍ1942년 임시정부의 내무차장(內務次長).
 ㆍ1943년 2월 박찬익(朴贊翊)ㆍ최동오(崔東旿)ㆍ유림(柳林)과 함께 임시정부 외무부의 외교연구위원회(外交硏究委員會) 위원으로 임명되어 임시정부의 대열강외교활동(對列强外交活動) 및 외교전반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였다.
 ㆍ1943년 4월 임시정부 선전부 선전위원으로 선전계획의 수립, 선전진행 방침 논의.
 ㆍ1945년 12월 1일 같은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홍진(洪震)ㆍ조성환(曺成煥)ㆍ신익희ㆍ조소앙 등 13명과 이계헌(李啓賢)ㆍ서상열(徐相烈) 외 9명을 포함한 23명 환국.
 ㆍ광복 후에는 혁신정당을 조직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9년 별세하였다. 


운암 김성숙 선생 약전

1918년 - 봉선사로 옮겨서 불교교리를 공부, 손병희와 불교계 인사인 김법린, 한용운 등과 교류.
1919년 - 봉선사 승려로 있을 때 3ㆍ1운동이 일어나자 비밀리에 독립문서를 만들어 일반 대중에게 살포하다 체포.
 1923년 - 북경으로 건너가 민국대학에 입학. 장건상 등과 더불어 혁명단체인 '창일당'조직, 『혁명』이란 기관지를 발행 및 배포.
1937년 - 조선민족전선연맹(민선)을 조직하여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며 기관지 『민족전선』을 편집, 간행함.
1939년~1941년 - 조선민족해방동맹은한국광복전선과조선민족전선연맹의발전적 해체를 통해 임시정부로 총단결할 것을 주장. 한중문화협회에 상임이사 겸 선전위원으로 선출. 임시정부 국무위원.
 1945년 -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환국. 해방 후 좌우합작 주장.
 1955년 - 5ㆍ16 이후 이른바 통일사회당 사건으로 옥고.
 1967년 - 신민당 운영위원 피선(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생활).
 1968년 - 신민당 지도위원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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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암 김성숙 선생 가계도 운암 김성숙 선생 가계도  ⓒ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