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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경인일보] "독립군 무기 쥐여준 최운산 장군, 봉오동전투 숨은 주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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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29 18:56 조회7,2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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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귀국' 외손자 최헌씨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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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 최운산 장군의 외손자 최헌(48)씨가 외할아버지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항일독립군의 활동상을 회상하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최근 영화 개봉 불구 잊혀진 역사 
"부산 6배 규모의 토지·공장 팔아 
군복 지어 입히고 무장시켜 훈련" 

고문 후유증으로 광복직전 숨져 
가족도 재산뺏기는 등 억울한 삶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복 74주년에 빛나는 2019년의 광복절은 그 어느 때보다 역사 바로 알기의 바람이 거세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군의 역사를 끄집어 내 모두의 기억 속에 각인시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 역시, 항일독립전쟁을 벌인 독립군의 첫 승리 임에도 청산리대첩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홍범도 장군만이 그 주역으로 알려졌지만 값진 승리 속에 독립군의 군복을 지어 입히고 신식무기를 쥐어주며 독립군을 양성한 숨은 주역을 자세히 아는 이는 드물다.  

최운산(1885~1945·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장군은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의 참모장으로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이다.  

총사령관인 큰형 최진동 장군을 따르며 안무, 박영, 홍범도, 김좌진 장군과 함께 일본군에 총부리를 겨눴다.

그의 외손자 최헌(48)씨는 어머니에게 최운산 장군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최씨의 어머니는 최운산 장군의 막내딸 최계순(2017년 작고)이다. 

"어머니와 큰이모(최청옥·별세)는 아버지를 정말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부산시의 6배 정도 되는 넓은 토지와 공장 십수개를 팔아 군자금을 마련했어요. 그 돈으로 독립군들에게 똑같은 군복을 지어 입히고 동유럽 군대가 연해주에 두고 간 신식 무기를 사들여 무장을 한 뒤 훈련시켰습니다. 그 덕분에 봉오동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지요." 

최헌씨는 최운산 장군이 운영하던 봉제공장에서 작업자를 모아 밤을 새워 가며 군복을 만들었다는 어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봉오동전투에 참가한 독립군은 통일된 복장을 하고 일본군에 맞섰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언을 토대로 유추한 최운산 장군은 중국 동북 3성에서 손꼽히는 무술의 달인이었다.

중국군벌의 보위부대를 이끌며 무술을 연마한 그는 당시 간도지역에서 기승을 부리던 도적떼로부터 동포를 보호하기 위해 한인을 주축으로 사병 100여명을 모집해 '자위단'을 창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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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산 장군의 외손자 등 영주귀국한 후손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자위단을 이끌면서도 그는 콩기름·국수·성냥·비누공장 등 다양한 생필품 기업과 대규모 목장을 운영했다.

그는 러시아군에 곡물과 소를 수출하면서 북간도 제1의 거부로 떠올랐고 그 자금을 아낌없이 독립군을 지원하는 데 쏟아부었다.  

중국군 엘리트 교육을 받은 최운산 장군은 1915년 독립군부대 도독부를 창설해 봉오동을 독립군 근거지로 삼았다. 그 소식을 들은 조선청년 수백명이 봉오동으로 모여들었고 최운산 장군은 그들을 정예 무장군인으로 양성하는 일을 도맡았다. 

최운산 장군은 봉오동전투에 이어 청산리전투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승전의 주역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광복을 40일 앞둔 1945년 7월, 최 장군은 수차례 옥고를 치르며 당한 고문으로 생긴 신병으로 민족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광복 이후 최운산 장군의 가족들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최운산 장군이 큰 기업과 목장을 운영하는 지주였다는 이유로 재산을 빼앗겼고, 봉오동에서 60㎞ 떨어진 용정시 개산툰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최헌씨도 외조부의 독립운동 역사를 숨기며 억울한 삶을 살아야 했다. 


2005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2017년 어머니와 함께 돌아온 한국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130여년 만에 이뤄진 귀국이었지만 독립군 외조부를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두 아들과 아내를 중국 칭다오에 두고 온 그는 외조부가 목숨 바쳐 지켜 낸 조국의 땅에서 가족과 함께 살 날을 손 꼽으며 오산의 허름한 빌라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