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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파이낸셜뉴스] 운암 김성숙선생 50주기 추모제 12일 현충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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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4-01 14:41 조회5,9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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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 김성숙선생


운암 김성숙선생과 중국 항일여성운동가인 부인 두군혜(두쥔훼이)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운암 김성숙선생 50주기 추모제'가 오는 1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


(사)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회장 함세웅)가 주최하고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 주관하며 국가보훈처와 서울특별시 후원으로 개최되는 이번 추모제는 ‘제20회 KBS 해외동포상’을 수상한 친손자인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두닝우’ 부부가 ‘항일독립혁명의 희망과 삶’을 주제로 ‘아리랑’, ‘투쟁’, ‘3.1운동의 노래’ 등 4곡의 피아노 연주를 영전에 바친다.

추모제에서는 ‘극단 밀양’에서 좌우로 나눠진 중경임시정부의 통합에 힘쓰셨던 운암 김성숙선생의 항일역사 창작 뮤지컬 ‘통일(統一)’도 선보인다. 유족과 중국 광저우 중산대학교 총장 등 중국 인사, 관련 단체장, 박원순 서울시장, 명진스님, 영담스님, 기념사업회 회원 등 5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50주기 추모제 식순은 운암 김성숙선생 다큐시청, 추모 뮤지컬(극단 밀양)개식, 국민의례, 운암 김성숙선생 약사보고, 내빈추모사, 두닝우 부부 피아노연주회, 합창단 추모곡, 헌화 및 분향, 조총 발사 및 묵념, 운암 김성숙선생 묘소 참배 순서로 진행되며 부천 석왕사합창단, 역사어린이합창단, 국방부 의장대와 군악대가 참여한다.

1898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난 운암 김성숙(雲巖 金星淑)선생은 19세에 출가, 1919년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의 격문을 뿌려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약산 김원봉 선생과 조선의용대를 조직하고, 일제 주요 기관 파괴를 목적으로 결성된 조선의열단에 가입하고 '반역사'(反逆社)라는 이름의 학생단체를 조직하고 항일투쟁을 계속하며 김원봉 선생과 함께 의열단을 배후 조종하며 항일투쟁 선봉에 섰다. 또 장지락,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원들을 황포군관학교에 입교시키고, 중산대학교 졸업생들을 포섭해 의열단에 100명이 넘는 단원을 가입시키는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지난 2016년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김성숙 선생 중국인 부인 두군혜(두쥔훼이, 杜君慧, 1904∼1981) 선생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위원으로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공로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고, 부부가 항일독립운동을 해 한·중 연합투쟁의 모범적인 사례로 주목받았다.

운암은 1945년 해방을 맞아 환국을 준비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약법 3장’을 통과시켰다. 3장 내용 중에 대립이 아닌 통합을 위해 좌우 모두 포섭하면서도 미·소 강대국과 평등한 외교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대목은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 상황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귀국 후에도 운암 선생은 초지일관으로 좌·우 합작 운동을 전개하며 이승만·박정희 정권에서 반독재운동을 펼쳐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그는 신민당 창당의 주역으로 운영위원·지도위원을 맡아 활동하다 1969년 4월 12일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2008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민성진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항일운동의 산실인 중국 광저우 중산대학교의 출신인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선생과 두군혜선생의 조국애와 그들의 헌신적인 삶을 계승, 발전시켜 한·중 양국의 민족정기 함양에 이바지하고자 ‘김성숙·두군혜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한·중 관계개선에도 일조할 것”이라며 “친일인사들이 저평가한 서훈을 서거 50주기를 맞아 국가보훈처를 통해 승격시키겠다”고 밝혔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