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우진 보훈처장, 김원봉 서훈 가능성 언급에
나경원 “김원봉은 반대한민국 공산주의자” 규정

의열단장·임시정부 군무부장 지낸 김원봉
해방된 조국서 친일경찰 노덕술에 체포 수모
여운형 등 암살 잇따르자 위협 느껴 월북

반민특위 등 친일청산 제대로 이뤄졌다면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여했을 것이란 평가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단·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단·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7일 피우진 보훈처장이 북한 국가검열상을 지낸 약산 김원봉에 대해 서훈 수여 가능성을 언급한 것을 두고 “좌파이념 독버섯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통성을 갉아먹고 있다”고 반발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당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김원봉을 “반대한민국 공산주의자”, “뼛속까지 북한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며 “(서훈 수여는) 결국 6·25 전쟁 남침을 주도하고 국토를 폐허로 만든 자를 국가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기리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런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두고선 반쪽짜리 역사 인식에 기반해 국민을 편 가르는 이념 공세라는 비판이 나온다.

나 원내대표의 언급처럼 김원봉은 해방 이후 월북해 북한 고위직을 지낸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의 발언에는 김원봉의 월북 경위나 그가 벌인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합당한 평가는 쏙 빠져 있다.

김원봉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의열단’을 꾸려 폭탄 투척과 요인 암살 등의 항일투쟁을 지휘한 대표적 독립운동가다. <암살> <밀정> 같은 영화 등을 통해 ‘의열단 단장’으로 잘 알려지긴 했지만,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과 광복군 부사령관, 임시정부의 마지막 국무위원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월북한 것은 나 원내대표의 말처럼 “뼛속까지 북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학계에선 오히려 김원봉이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는 평이 많다. 김원봉이 월북하게 된 건, 해방 직후 돌아온 조국에서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는 등 수모를 겪은 것 때문이란 얘기가 나온다. 노덕술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혹독하게 다룬 친일경찰로 악명이 높았다. 해방 뒤 다시 경찰 간부가 돼 나타난 그는 친일파 청산을 외치는 김원봉을 체포하고 고문했다. 당시 김원봉이 “조국 해방을 위해 일본 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한 일이 없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의해 수갑을 차다니 이럴 수가 있냐”며 사흘 밤낮을 통곡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학계에는 해방 이후 돌아온 조국에서 친일파로부터 수모를 겪은 데다 당시의 복잡한 정치 지형 속에서 여운형 등 독립운동가들이 잇따라 암살되자, 김원봉 역시 생명에 위협을 느껴 월북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북한으로 간 뒤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의열단 단장으로 항일운동을 이끈 지도자인 만큼, 김일성도 그를 홀대하진 못했다. 정부수립 당시 초대 국가검열상을 맡겼지만, 김일성은 1950년대 중반 라이벌인 그를 숙청했다.

 

이런 이유로 해방 후 친일파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고, 나 원내대표가 비난한 반민특위 등의 과거 청산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됐다면, 김원봉처럼 남쪽이 고향인 민족주의자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를 했으면 했지, 북으로 넘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이날 나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김원봉 서훈 문제 등을 언급하며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의 뿌리를 뽑아 버리고 좌파독재이념의 뿌리를 심겠다는, 말 그대로 셀프적화”라며 이념 공세를 폈다. 지난 14일 “해방 뒤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분열됐던 것을 기억하느냐’던 발언의 연장선에 있다.


나 원내대표의 이런 발언에 대해 정치권에선 “왜곡된 역사인식이 심각한 수준”이란 반응이 나왔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에서 나 원내대표가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주역인 김원봉을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며 서훈 추진에 반발한 것에 대해 “친일파를 제때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비극적 단면”이라고 논평했다.


이 대변인은 “앞서 반민특위를 폄훼해 독립유공자들의 반발과 국민의 공분을 샀던 나 (원내)대표가 친일청산을 부르짖던 독립운동가를 비난하고 나서며 색깔론을 들먹이고 있다”며 “독립운동과 친일청산 노력을 색깔론 정쟁으로 폄훼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국민은 없다”고 비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