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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연합뉴스] "윤봉길 의거 김구 지시 아냐..'도시락' 아닌 '물통'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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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08 15:00 조회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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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복 월진회 회장, 저서 '윤봉길 평전' 통해 역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環)."

일본의 제국주의 광풍이 맹위를 떨치던 1932년 4월 29일, 한 조선 청년은 중국 상하이의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내던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나이 고작 스물다섯 살. 이 폭탄 투척으로 일왕 생일과 전승 축하 기념행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혼과 기상을 일깨워준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 우리는 그를 얼마나 상세히, 그리고 정확히 알고 있을까? 의거 당일에 던진 폭탄만 해도 '도시락 폭탄'이라는 말과 '물통 폭탄'이라는 말로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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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효창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 묘소 

이태복 매헌 윤봉길 월진회 회장은 '윤봉길 평전'을 출간해 '도시락 폭탄'설, '김구의 행동대원'설 등 일부 견해에 대해 "이는 허구"라며 제동을 건다. 2002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저자는 윤 의사가 던진 것은 도시락 폭탄이 아닌 물통 폭탄이었으며, 윤 의사가 백범 김구의 지시에 따라 거사를 한 행동대원이었다는 주장 역시 잘못된 허구였다고 밝힌다.

책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행동대원 프레임'이다. 이 같은 견해는 '백범일지'에 근거하는 것으로 상하이 거사의 주모자는 김구 선생이고 윤봉길 의사는 그 지시에 따라 폭탄을 투척한 행동대원이었다고 본다.

저자는 "김구 측근으로부터 나온 '프레임'을 명확한 근거로 바로잡고 싶어 이 책을 집필했다"며 "4.29 상하이 폭탄 투척 의거는 윤 의사의 주체적 독립전쟁 선포였음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행동대원 윤봉길 프레임'이란 백범의 측근 그룹이 김구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고 도산 안창호 등에 집중되는 중국 측의 후원을 자신들에게 돌리려는 책동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이어 윤 의사의 살신성인 투쟁 의지, 안창호 선생 등 상하이 독립지사들의 노력, 김구 선생의 적극적 안내가 어우러진 의열투쟁이었다고 정리한다.

'도시락 폭탄'설에 대해서도 의거 현장에서 윤 의사가 실제로 던진 것은 물통 폭탄이었다며 "이 물통 폭탄을 먼저 던지고 나서 도시락에 숨긴 폭탄을 더 던지려 했으나 체포되고 말았다"고 밝힌다. 이 회장은 "사소한 문제로 보이지만 우리는 물통 폭탄과 도시락 폭탄의 간극만큼이나 윤 의사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안타까워한다.

충남 예산 출신인 윤 의사는 1929년 자력갱생의 취지로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문맹 퇴치 운동과 농촌계몽 운동에 앞장서오다가 그해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 등에 충격받고 망명길에 올라 만주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저자 역시 예산중학교 2학년 때 굴욕적 한일회담 규탄 시위와 윤봉길 의거일의 '군민 기념일' 제정 서명운동에 참여하며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 문제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사형 구형을 받은 뒤 7년 4개월 동안의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윤봉길 평전'은 '도산 안창호 평전', '토정 이지함'에 이어 저자가 세 번째로 펴낸 인물 평전이다.

동녘 펴냄. 332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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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평전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