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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연합뉴스] 신채호 며느리 이덕남 여사 "3·1 운동은 혁명이라 불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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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01 18:39 조회5,79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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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100년 만들어야 하는데 물고 뜯는 사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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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인 이덕남 여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3·1운동이 올해 100주년인데 혁명이라 부르는 게 가장 어울립니다"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1880.12~1936.2)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76) 여사가 3·1절을 맞아 이렇게 말했다.

1일 베이징의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이 끝나고 만난 이 여사는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물고 뜯는 사람이 있어 문제"라고 우려했다.

그는 다만 "역사 인식이 확고한 정부가 들어서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인, 사학자, 독립운동가였던 신채호가 1923년 천명한 '조선혁명선언' 때문에 후손까지 "빨갱이로 취급받기도 했다"면서 "돌에 새겨 보존해야 할 문장인데 아직 그럴 만큼 세상이 해방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신채호 선생은 애국 계몽운동에 힘썼으며 항일비밀결사 신민회에 참여했다.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돼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 있는 뤼순 감옥에서 1936년 옥사했다.

10여년 전부터 딸이 사는 베이징에서 지내고 있는 이 여사는 베이징에도 독립운동가들이 살았던 자취가 많았는데 사라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형편 때문에 보존하지 못해 죄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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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베이징 한국 대사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이 여사는 지금까지 정부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처사에는 "분하고 원통하다"고 말했다.

세상을 떠돌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도 광복 이전에 순국했으면 호적도 없다면서 "신채호 이름으로 땅이 있어도 호적이 없어 등기를 못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완용과 송병준의 후손들은 땅을 찾아갔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중국 인민군 해방가를 작곡한 것으로 유명한 음악가 정율성의 딸 정소제씨는 아버지가 작곡했다는 3·1행진곡 악보를 기증했다. 

그는 "앞으로 한중 양국이 독립운동 관련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면서 "이런 영화를 제작하면 선열을 기리고 양국 우호도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김산(본명 장지락)을 비롯해 김동진, 김성숙, 김철남, 우병렬, 유자명, 한락연 등 애국지사의 후손들이 참석했다.

기념식 참석자들은 다 함께 만세삼창을 했다. 

한국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이날 베이징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면서 무장투쟁을 주로 내세웠던 이들이 남북 분단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y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