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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세계일보] 김성수 가옥이 서울미래유산 지자체, 친일파를 민족지도자로 미화[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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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9-05 09:17 조회5,9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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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36년의 피압박 민족의 설움 속에서 거대한 민족자본을 형성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한 언론과 육영사업을 통해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는 등 평생을 국가와 민족에 바친 민족의 대 지도자이다. (중략) 어질고 원만한 인격, 겸허와 투철한 의지의 지성인, 근대사의 탁월한 경세가로서 민족의 가슴에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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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군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인촌 김성수에 대한 설명. 고창군 홈페이지

전북 고창군 홈페이지에 소개된 인촌 김성수(1891∼1955)에 대한 설명이다. 김성수의 고향인 고창군은 그를 지역의 역사적 인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4월 김성수가 일제의 징병·징용을 주도적으로 선정·선동했다며 그의 친일행위를 인정했다. 이어 정부는 지난 2월 김성수의 공적은 허위라며 56년 만에 김성수의 서훈을 박탈했다.


정부가 내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민족 지도자’로 칭송하고, 그들을 기리는 기념물을 공공시설에 버젓이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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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종로구 계동의 인촌 김성수 가옥. 서울시 제공


◆김성수 가옥이 ‘서울미래유산‘?…공공시설에 친일파 기념물 34점 전
4일 민족문제연구소가 2015년 작성한 친일행위자 기념사업 현황표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친일 인물 89명의 이름을 딴 기념물이나 기념사업은 총 240여건에 달한다. 이 중 정부소유 건물과 공공시설 등에 설치된 친일 인물 기념물(추모비, 동상, 흉상 등)만 총 34점이며, 시·도 지정문화재로 관리되는 기념물이나 시설을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경우, 김성수의 서훈 박탈로 현충시설이 해제된 종로구 계동 김성수 가옥을 여전히 ‘서울미래유산’으로 홍보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곳을 ‘민족 교육과 계몽 운동에 주력한 정치인 김성수가 거주하던 가옥으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배후 지원 및 민족 교육, 민족문화의 보급을 위해 노력했던 장소로써 보존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시가 선정한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100년 후의 보물’로, 서울시는 선정된 유산을 중심으로 역사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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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종로구 계동의 인촌 김성수 가옥과 동상. 서울시 제공 

이에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가 서울시에 미래유산 해제를 공식 요청했지만 4개월여가 지나도록 안건은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서울미래유산 관계자는 “이런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상시로 심의위원회를 구성할 수는 없다”며 “최근 미래유산보존위원회를 구성했으며 9∼10월 중 여러 안건과 다 같이 심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천시도 대표 친일 인물인 김활란(1899∼1970)을 인천을 빛낸 인물로 선정해 최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그의 업적을 칭송하며 ‘활약이 대단했던 여성 지도자’로 소개하다 이달 중순 무렵 글을 삭제했다. 김활란은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친일단체 등에 참가하고 징병제의 타당성과 황국 여성으로서의 사명을 강조했다.


친일 인물과 독립운동가의 기념물이 나란히 세워진 경우도 있다.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옆 미관광장에는 대표적 친일 시인인 주요한 시비와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이 함께 세워져 있다. 또 일제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글들을 발표한 장덕수는 서울 중랑구 망우리애국지사묘역에 한용운, 조봉암 등과 함께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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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 세워진 초대 총장 김활란의 동상. 뉴스1


◆ 친일 기념물 관리 기관 ‘난색’…“친일 인물 ‘공과’ 제대로 알려야”

시민단체와 대학사회는 지자체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비판하며 기념물을 철거하거나 기념물 앞에 친일 행적을 함께 기록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지자체와 관리 기관들은 강제성 있는 법안이 없는 데다 건립 단체의 반발로 철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앞서 2015년 5월 김영록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현 전남도지사)이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한 친일 인물 기념물 설치와 일반 공개를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 없이 자동폐기됐다.

 

그나마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심의를 요청하거나 심의를 권고할 수 있다’고 조례를 개정했는데, 이마저도 친일 기념물 철거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는 지난 4월 서울대공원 입구에 있는 김성수 동상 철거에 관한 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 심의위는 ‘동상 철거는 정치적인 사안으로, 객관적·역사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며 역사전문기관과 시민들의 의견을 더 보완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서울대공원 측은 국사편찬위, 한국근대사학회, 동북아역사재단, 독립기념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5곳의 역사전문기관에 철거 당위성에 대한 자문을 의뢰했으나 5곳 모두 ‘평가하기 어렵다’며 답변을 거부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만 기다리기보다는 기념물에 인물의 ‘’과 ‘’를 모두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국립국악원은 원 내에 설치된 원로국악인들의 동상 중 일부 인물들의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되자 공적 옆에 친일행위도 함께 알린 대표적 모범 사례”라며 “과거에는 친일 인물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아 기념물을 그대로 뒀지만 이제는 정부가 친일 인물을 명확히 한 만큼 이들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알리는 것은 더는 정치적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