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등지서 독립운동…'82년 건국훈장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승려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항일 투쟁에 헌신한 운암 김성숙 선생 제52주기 추모제를 오는 12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에서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추모제는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 주관으로 열린다.
승려 출신인 김 선생(태허 스님)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능화 스님의 불교 추모 의식과 팝페라 그룹 듀오아임의 추모곡 헌정이 마련됐다.
김 선생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태어나 19세에 출가해 승려가 됐다.
그는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 승려로 있을 당시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어 인근에 살포한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출옥 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조선무산자동맹과 조선노동공제회에 가담했다.
1923년 초 일경의 탄압이 심해지자 선생은 승려 5명과 함께 베이징으로 망명해 민국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사회주의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한인 유학생사회에서 이름을 떨쳤다.
1935년 12월12일 김 선생과 두쥔훼이 부부는 상하이 문화계 구국운동 선언을 발표했다. 선생은 상하이 여성구국회에도 가입해 중국 여성계 항일구국운동에도 참여했다.
1944년 4월24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이시영·조성환·황학수·조완구·차리석·장건상·박찬익·조소앙·성주식·김붕준·유림·김원봉 등과 함께 국무위원에 선임됐다.
선생은 충칭 임정시기 한·중 연대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1942년 10월11일 열린 중한문화협회 성립대회에서 이사로, 10월17일에는 선전조 부주임으로, 1945년 3월15일에는 한국구제총회의 감사로 선임됐다.
광복 후 선생은 서울로 들어와 근로인민당 결성 등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9년 4월12일 피우정에서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