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 안중근 의사 가묘 앞에서 111주기 추도식 열려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의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객지에서 죽은 사람을 고향으로 옮겨 장사 지내는 것)해 다오."
111년(1910년) 전 오늘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언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안중근 의사 빈 무덤 앞에서 다시 울려펴졌다. 당시 안 의사는 정근과 공근 두 동생에게 "나는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면서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 의사의 유해는 111년 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일제가 안 의사의 유해를 감췄기 때문인데,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조선 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는 이듬해 이토가 사망한 시각인 오전 10시에 맞춰 사형을 당한다. 일제는 안 의사의 유해를 돌려주지 않고 임의로 매장해버렸다. 관련 기록 역시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
당시 일제의 감옥법에 따르면 사망자의 가족과 친지가 요청하면 언제라도 유해를 내주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일제는 안 의사의 유언대로 안 의사가 하얼빈 공원에 묻히게 되면 하얼빈이 한인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해 유해를 돌려주지 않고 암매장해 버렸다.
이는 1932년 4월 중국 훙커오의거를 일으킨 윤봉길 의사 때도 그대로 적용됐는데, 일제는 일본 가나자와에서 총살 당한 윤 의사 유해를 가나자외 외곽 공동묘지 쓰레기장 입구에 암매장했다. 윤 의사의 유해가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될 것을 우려해서다. 해방 후인 1946년에야 백범 등 여러 지사들의 노력으로 윤 의사의 유해가 발굴돼 지금의 자리인 효창원에 모셔진다. 안 의사의 가묘 역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등 3명이 모셔질 때 함께 마련됐다.
"안 의사가 바란 독립은 남북이 하나 된 민족국가"
이날 효창원 삼의사 묘역에서 진행된 안중근 의사 111주기 추모식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렸다. 코로나19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 가까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며 '그의 유언을 실천해야 한다'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포문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가 열었다. 함 신부는 추모사를 통해 "안 의사는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 부국강병한 나라를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면서 "안 의사가 유언으로 남긴 독립은 남북이 하나 된 민족국가"라고 강조했다.
"해방 후 남과 북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을 선택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지금도 온갖 술수를 부려 통일을 방해하려는 자, 남과 북을 적대하여 갈등하고 싸우도록 조장하려는 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안 의사가 말한 하나 된 나라, 부강하고 모두가 잘 사는 우리 공동체는 누구도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청년안중근 소속 최대혁씨도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나. 안 의사가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독립의 시대에 살고 있냐"면서 "우리는 안 의사가 지킨 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그 일은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자유독립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소장은 "나라를 지키고 통일된 독립국가를 염원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안 의사와 같은 선각자의 길을 따르는 것이 시대의 사명이자 의무"라면서 "내부의 싸움을 멈추고 안 의사의 유훈을 따라 자주독립국가로 하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 의사 유해발굴이 동양평화의 길"
그러나 안 의사의 유해는 여전히 어디에 안장됐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2018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는 북한과 공동사업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한다"면서 의지를 밝혔지만 냉랭해진 남북관계로 큰 진척이 없다.
앞서 노무현 정권 당시인 2005년 6월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및 봉환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실무접촉을 진행해 유해매장 위치와 관련한 자료를 교환하고 매장 추정지 일대에서 공동조사도 했지만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08년 들어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작업을 추진했지만 마찬가지로 성과를 보지 못했다.
'안 의사의 유해봉환이 현실적으로 이제는 어렵다'라는 의견이 이어지는 이유인데, 중국 현지에서 십수 년 동안 안 의사 유해를 추적한 하얼빈대 김월배 교수는 지난 20일 펴낸 책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참 평화의 길이다>에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김 교수는 "2008년 정부조사를 통해 원보산 일대에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혀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오히려 '뤼순일아(일본 및 러시아)감옥구지 박물관'에서 동쪽으로 1.2㎞ 떨어진 공동묘지에 안장됐을 가능성이 있다. 유해를 발굴하면 안 의사의 유해로 단정 지을 수 있는 4가지 논리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기록(소노키 보고서)에 의하면 안 의사가 안장된 관은 나무로 된 직사각형 침관이다. 이는 뤼순감옥 대부분 죄수들이 앉은 자세로 묻힌 원통형 관과는 다르다. 안 의사의 유해는 누워있는 상태로 있다. 또 당시 뤼순감옥 사망자의 관에는 반드시 망자의 이름을 표기한 파란색 유리병을 넣었다. 침관 유리병에 안 의사의 이름이 적혔을 거다. 무엇보다 1909년 봄, 안 의사는 러시아 크라스키노에서 단지동맹을 했다. 유해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이 잘려 있다. 마지막으로 안 의사 후손의 DNA가 보관돼 있으니 유전자 감식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안 의사 유해발굴은 남과 북의 협조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도움도 받아야 해결이 가능하다"면서 "안 의사의 고향은 북한 황해도 해주다. 북한은 당위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중국 역시 안 의사가 돌아가신 직접적인 지역이기 때문에 협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본은 역사적인 원죄를 짓고 있는 만큼 역사적 화해 차원에서 유해발굴에 동참해야 한다. 그래야 바로 뤼순에서 '동양평화협의체'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의사는 옥중에서 미완의 유작이 된 '동양평화론'을 남겼다. 동양평화론에서 안 의사는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가 뤼순과 같은 분쟁지역에 '동양평화회의'를 설립하여 경제적·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을 이룰 수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 추모식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깜짝 방문해 안 의사를 향해 참배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글 김종훈, 사진 권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