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동아 모두) 인터뷰 요청조차 하지 않았다. 내 의견은 듣지도 않고 말 그대로 그냥 썼다. 하지만 조선과 동아일보니까, 두 신문이 걸어온 길이 있으니까, 저희 작품을 욕하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그럼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을 넣지 않고 여운형 선생을 넣었다'라는 지점은 큰 논란이 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넣지 않은 이유가 있나?
"열린마당에 전시된 1921년 1월 1일 임시의정원의 신년축하 모습을 재연한 작품(바로 위에 사진)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있다. 큰 그림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없을 뿐이다. 솔직히 이승만 전 대통령을 조금만 공부해보면 왜 넣지 않는지를 알 수 있지 않나? 결과적으로 이 전 대통령은 두 번 쫓겨났다(작가는 '탄핵당했다'는 표현을 썼다), 작품으로 표현하기에 너무 애매한 지점이 많다."
- 한 쪽 자료만 보고 '독립운동가를 평가한 것 아니냐'라는 반론도 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창작 행위다. 저 또한 나 스스로 먼저 그리고 싶은 독립운동가들을 그린 거다. 아직도 그려야할 많은 분들이 남아있다. 지금까지 이승만 전 대통령은 그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 일부에서는 작품 선정 과정에서 정부의 지침이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지적도 한다.
"아니다. 원래부터 그려 놓은 12명의 독립운동가 작품이 있었다. 이 중 게시되는 환경에 맞춰 필요한 작품을 선택해 전시한 것이다. "
그의 말처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외벽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여운형 선생, 남자현 의사, 안중근 의사, 김상옥 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이봉창 의사, 안창호 선생, 이회영 선생 등 10인의 모습이 100m*17m(가로*세로) 크기로 걸렸다.
같은 시기 외교부 건물에는 동아일보가 "심지어 인지도가 떨어지는 김규식"이라고 표현한 파리강화회의 대표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 선생이 유관순 열사와 안창호 선생과 함께 전시됐다.
"저희 LAC 크루 멤버 모두 말도 못할 정도로 기뻐했다. (참고로 전시된 독립운동가 그림은 모두LAC 크루 소속의 레오다브와 헥스터(Hexter/황은관)와 다솔(Dasol/한다솔) 작가가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그라피티 작품을 광화문에 전시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게 놀라웠다. 독립운동가를 처음 그리기 시작한 시점이 2013년이다. 당시에는 그라피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적었고, 작품으로 보는 경향도 부족했다. 그런데 불과 수년 만에 광화문에 작품이 전시가 된 거다."
- 어떻게 독립운동가를 그리게 됐나?
"2013년은 국정교과서를 비롯해 일베 논란 등 사회적으로 역사왜곡이 크게 이슈화 됐다. 당시 개인적으로 첫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인데,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면 나중에 아이랑 다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라피티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그렸다. 삼청동 정독도서관 벽에 새겨진 산타 김구와 유관순 열사가 그렇게 탄생했다."
- 처음부터 허가 받고 그린 건가?
"아니다. 정독도서관은 허가받지 않고 그린 작품이다. 완성까지 총 3개월 정도 걸렸는데 2년 쯤 지나니 도서관에서 오히려 먼저 연락이 왔다. 벽을 보수하는데 작품을 복원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 허가 받지 않고 그림을 그릴 경우 문제가 되지 않았나?
"딱 한 번 문제가 됐다. 인천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기념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세월호 글자를 그려넣었다. 기존에 산타 김구와 유관순 열사 등 독립운동가 작품들 옆에 그린 거다. 아무 문제가 없다가 박 전 대통령과 세월호를 그리고 나서 문제가 됐다. 결국 기존에 그린 독립운동가 그림을 포함해 전부 지워졌다."
- 김구 선생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 알록달록한 무늬를 넣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카모(CAMO) 패턴이라고 한다. 위장을 뜻하는 얼룩무늬다. 대학 때까지 춤을 췄다. 그런데 함께 춤을 추던 끼 많던 친구들이, 나이가 들면서 다들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했다. 회색빛 얼룩무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색깔을 마음껏 드러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얼굴무늬에 색을 입힌 이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에 순응하면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질 않았다. 다들 자기 색을 철저하게 드러내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색을 가진 카모가 자연스레 독립운동가와 연결이 됐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자 크루의 리더로서 쉽지 않을 것 같다.
"솔직히 독립운동가 시리즈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 국내는 미술 시장 수요가 워낙 적다. 다른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독립운동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다. 광고 등 작업을 병행하는 이유다. 이렇게 활동한 것을 바탕으로 자료를 찾고 연구를 한다. 밀양에 직접 가서 약산 김원봉 선생의 집터를 눈으로 확인한다든지 헌책방에 직접 가서 옛 자료를 모은다. 작품들은 그렇게 완성된다."
- 끝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독립운동가를 집중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한 때 청년들이 체게바라 새겨진 옷 입고 다녔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새겨진 옷을 자연스럽게 입고 다니는 모습도 보고 싶다. 과정에서 우리 LAC 크루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독립운동가를 알리기 위해 노력할 거다. 다른 청년들도 웹툰이든, 음악이든, 의류든 자신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가를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