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전하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예전보다 친지들이 저의 할아버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을 더 친숙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큰 변화라면, 저와 제 아내가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는데 지난번 한국 갔을 때, 안중근기념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독립운동가 유적지 등 한국의 역사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참관하면서 한국의 역사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궁중요리, 지방특색 요리 및 전통음악을 접하면서 음식과 음악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지요. 또, 전통음악 판소리의 하나인 창을 들었는데 한 사람이 반주없이 노래하며 북을 치는 모습이 아주 신선하고 매력적이 었습니다. 이런 원시적이면서 아리랑과 비슷하면서 다른 창법의 음악은 서양의 미성창법이나 전통음악과 다르고 일본의 소리보다 훨씬 듣기 좋았습니다.
한국 방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체험은 침대가 아닌 바닥(온돌)에서 두꺼운 이불을 깔고 잠을 잤는데, 왠지 땅과 가까워진 느낌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식사를 할 때도 바닥에서 밥을 먹는 한국밥상문화를 체험했는데 모두가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훌륭한 분들인데, 두닝우선생님 아버지, 어머니도 예술쪽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네 그렇습니다. 두 분 모두 작곡가로서 음악인이십니다. 아버지는 18살 때 처음 음악을 접했는데, 커서는 현악을 전공했습니다. 아버지가 음악인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할머니가 크게 반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워낙에 과학과 수학성적이 뛰어나, 그 방면으로 키우려던 할머니의 기대를 엎고 음악을 한다고 했으니 모자간의 갈등이 상상이 가죠.
이제 선생님 이야기를 해볼까요. 처음 피아노를 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6살 때부터 입니다. 부모님이 모두 음악을 하다보니, 집에 피아노가 있어 당연하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중국에서 피아노는 대부분 수입이어서 집에 피아노가 있기 쉽지 않았거든요. 저는 운 좋게 부모님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국제 콩쿨에서 수상도 많이 하셨던데, 가장 인상깊은 수상은 언제인가요?
당시 호주 시드니피아노콩쿨은 규모가 아주 컸습니다. 그때도 유명한 중국인 피아니스트들이 이 대회에서 수상을 하였지만 1등은 없었습니다. 제가 1985년 중국 대륙인 최초로 1등 수상을 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선생님 부부는 더블피아노 연주로 유명하신데 같이 연주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많이들 물어보는데 특별한 계기는 없습니다.(웃음) 늘 혼자 연주를 하다가 무료함에 어느날 둘이 함께 연주를 했는데 괜찮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함께 합주를 하게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두닝우선생님의 행보와 한국과 인연은 어떻게 이어갈 계획인가요?
할아버지 덕분에 해외동포상도 받았고, 한국에 대한 이해도 많이 높아졌습니다. 앞으로 한국 음악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한국 혈통을 살려 ‘한국풍의 음악’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또, 올 10월에 오픈될 음악을 배우고 교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음악전문플랫폼을 개발 중에 있는데, 그때면 플랫폼에서 저희 연주 영상과 강의 영상을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한국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회와 중국 중산대학과 협력하여 할아버지의 기념관을 중산대학에 설립할 계획이 있는데, 이 일에 힘을 다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피아니스트로서 지금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조언을 부탁합니다.
1. 善于思考 / 많이 연구하라
2. 不忘初心 / 초심을 잃지 말라
3. 要有毅力 / 지구력을 키워라
한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요소들이겠지만, 이 세 가지는 피아노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