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독립군 후손 단체들 "정치권 기웃거리는 재향군인회 해체" 외쳐
▲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김진호 회장의 사퇴와 백선엽 장군의 훈장박탈 등을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독립군 토벌했던 간도특설대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더냐!"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가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재향군인회 본부 앞에 건 현수막 내용이다.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뿐 아니다. 이날 재향군인회 본부 앞 거리에는 신채호, 여운형, 김규식, 김상옥, 차리석, 이상설, 안중근, 윤봉길 등 우리가 흔히 들었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후손 및 관련 단체들이 직접 건 현수막들이 내걸렸다. 하나같이 재향군인회를 규탄하는 목소리였다.
독립운동기념사업회 연합체인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이하 항단연)은 재향군인회(이하 향군)가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두고 우리 군의 영웅이자 국군의 뿌리라고 주장한 데 대해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해체하라"며 단체 해산을 촉구했다.
이번 항단연의 집단행동은 지난달 20일 향군이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앞에서 진행한 김원웅 광복회장 규탄 집회에 대한 '반격' 개념의 집회였다.
항단연은 "향군이 간도특설대 장교로 독립군을 토벌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치 않는 백선엽을 전쟁영웅이라 칭하고 국군의 뿌리라고 주장했다"면서 "나아가 향군은 독립유공자 후손이자 친일청산에 일생을 헌신한 김원웅 광복회장을 맹비난했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항단연 초대 회장이기도 한 김원웅 광복회장은 지난달 16일 황교안 대표가 백선엽 장군을 예방한 것과 관련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백선엽 예방을 꾸짖는다"라는 제목의 광복회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김 회장은 성명에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보훈의 달에 황 대표의 백선엽 예방은 국가 정체성을 부인하는 행위"라면서 "항일독립정신을 외면하는 것은 반역이며, 황 대표는 이런 몰역사적인 행위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라고 주장했다.
100세 생존 애국지사의 불호령
▲ 생존 독립운동가 임우철 애국지사 ⓒ 김종훈
이날 항단연 향군 규탄 집회에는 특별한 손님이 함께했다. 생존 독립운동가인 임우철 애국지사는 향군을 향해 "친일파 백선엽은 국민에게 사죄하라"라고 일갈했다.
1920년 충남에서 출생한 임우철 애국지사는 1940년대 일본에서 활동했던 독립유공자로, 일제가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인의 참전 강요를 위한 '내선일체(內鮮一體)' 정책을 밀어붙이자 이에 대한 반감으로 도쿄에서 고학하며 김명기, 김순철 등 지사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실천했다. 임 지사는 이 일로 일제에 체포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해방이 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이날 임 지사가 "간도특설대가 국군의 뿌리냐, 정치권 기웃거리는 재향군인회는 해체하라"라고 발언하자 집회에 참석한 항단연 회원들은 큰 박수로 환호했다.
100세가 된 임 지사는 거동조차 쉽지 않은 상태임에도 재향군인회와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규탄하기 위해 노구의 몸을 이끌고 집회에 참석해 항단연의 행동에 힘을 보탰다.
임 지사에 이어 연단에 선 항단연 회원들도 향군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갔다.
의병장 남상목 선생의 손자 남기형 선생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가난에 허덕이다 배움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면서 "친일파와 후손들이 국회의원이 될 때, 독립유공자 후손은 수위가 됐다. 이런 홀대도 억울한데, 재향군인회는 광복회관 앞에 와서 친일파를 위해 규탄집회를 하고 주먹질을 했다. 정신 나간 것 아니냐"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제 할아버지(남상목 선생)는 친일파 송병준의 아들한테 밀고를 당해 서대문감옥에서 서른셋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면서 "국립묘지에 잠든 친일파가 수십 명이다. 국방부는 이들 먼저 파묘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회원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앞에서 열린 규탄 집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이희훈
▲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김진호 회장의 사퇴와 백선엽 장군의 훈장박탈 등을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