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씨 "일본 이해하기 어려워…가해자가 보일 태도 아냐"
"감정적 맞대응 대신 어른답게 행동해야…친일-반일 분열 가슴 아파"
김상옥 의사 [김세원씨 제공]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정말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기 어렵네요. 옛날로 돌아가자는 건지 참…."
독립운동가 김상옥(金相玉, 1890∼1923) 의사의 외손자 김세원(72)씨는 최근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등 한국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의 외조부 김상옥 의사는 의열단원으로서 1923년 1월12일 항일 독립운동 탄압의 상징적 장소였던 서울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이후 피신했던 그는 1월22일 자신을 뒤쫓아 온 일본 경찰대와 총격전을 벌이다 마지막 남은 총알 1발로 자결했다.
2016년 개봉해 인기를 끈 영화 '밀정' 초반부에 쌍권총을 들고 일본 경찰에 대항한 '김장옥'(박희순 분)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김장옥의 모티브가 김상옥 의사다.
74주년 광복절을 앞둔 14일 만난 김씨는 "일본이 얼마나 우리나라가 우스웠으면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이는가"라며 "국가 간 청구권 협정이 완벽하든 그렇지 않든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가해자가 보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김상옥 의사 외손자 김세원씨 [촬영 최평천]
그는 "설사 우리가 떼를 쓰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가해자(일본)는 '노력하겠다'고 말해야지 이런 식의 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은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하려고 하면서 함께 살려고 하는데 일본은 선진국다운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 일본은 악인(惡人)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일본의 식민통치로 외할아버지를 잃었던 만큼 개인적으로 일본을 좋은 이웃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이 일본을 원망이나 증오의 대상으로만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과거 독립운동을 할 때는 일본과 완전한 단절을 꿈꿨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일본과 완전히 교류를 끊고는 살 수 없다"며 "일본이 선진국다운 모습을 못 보여줄 때 우리라도 선진국다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정적으로 맞대응하기보다 우리가 어른답게 행동해야 한다"며 "이런 아픔이 있을수록 정신을 차리고, 하나의 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스스로 발전시키고 성장시켜서 일본이 감히 넘보지 못할 나라를 만들어가는 자극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최근 국내 일부 학자나 정치권 인사를 둘러싸고 빚어진 친일 논란을 두고는 "국민들끼리 친일-반일로 분열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마음을 합쳐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조부 김상옥 의사를 포함해 많은 국민이 희생당한 일제강점기가 국가 지도자의 무능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하면서, 어려운 시국에서 정치권이 이성적이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해방된 지 74년이 지났지만, 외할아버지를 잃고 힘들게 살아온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김씨는 여전히 눈물이 난다고 한다.
김씨는 "어머니가 여섯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에게는 외할아버지 기억이 거의 없다"며 "가장이 사라져 외할머니가 힘들게 남매를 키우셨다"고 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하기 전 철물점을 운영하며 돈을 꽤 벌었다"면서 "3·1운동 이후 가정과 사업을 뒤로한 채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안 했더라면 가족들이 고생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힘들게 살았지만 외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자랑스럽다"면서 "다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정부가 노력하고, 후손들이 덜 고생하도록 지원을 잘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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