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이야기를 만나던 날
만주독립운동의 숨겨진 영웅‘최운산 장군’
100년 된 이야기를 만나던 날
우리나라 무장독립운동사의 상징,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지난 토요일 인사동에 그림도 보고 지인도 만날 겸 나간 자리에서 우연히 최운산 장군의 손녀 최성주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사 및 언론개혁시민연대운동 공동대표를 만나 봉오동 전투와 최운산 장군의 일대기를 듣게 되었다.
독립운동사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신 분이셨으나 역사 속에서 묻혀버린 그 분의 이야기는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독립군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저녁식사 자리가 역사공부시간이 되어 버린 듯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최운산 장군은 19세기말 고종이 간도에 관리책임자로 파견한 최우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냥공장과 비누, 국수, 콩기름 공장 등을 운영하며 축산업과 무역업을 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던 지주, 갑부였다고 한다. 만주독립군은 헐벗고 굶주린 빨치산 비정규 군사조직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운산 장군이 이끌었던 봉오동전투는 빨치산 수준의 부대가 아닌 군대로서의 모든 기능을 가진‘정식군대’였다고 한다.
최성주 대표의 말에 의하면 최운산 장군은 당시 북만주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을 통합해서 ‘대한북로독군부’를 창설한 뒤 사관학교를 만들었다. 본인이 총참모장을, 그의 큰형 최진동이 총사령관으로 있던 대한북로독군부는 봉오동을 근거지로 삼아 1912년부터 1919년까지 사병, 부대원을 모집해 양성했다고 한다.
산중턱을 개간하여 연병장을 만들고, 수백명의 독립군들이 숙식할 수 있는 막사를 세웠고, 보급부대와 의무부대를 창설했다. 최운산 장군은 당시 대포와 기관총, 수류탄 수천 개, 장총 천여 정, 권총 수백 정, 실탄 수만 발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기는 싸움을 준비했던 것이다. 지주이자 거부, 사업가이면서 독립투사였던 그는 사업가의 기질과 수단이 뛰어났고, 그렇게 벌어들인 군자금은 러시아의 신식무기를 공급하는 데 사용되었다. 재정적 지원과 뛰어난 지도력, 그리고 무술에까지 능통했던 그는 사병들의 총포술과 무술교육까지 담당할 수 있는 최고의 지도자였다.
우리의 군대가 일본의 군대와 싸워서 이겼던 첫 승리의 봉오동전투는 우연히 하늘이 도와서 이긴 싸움이 아니었다. 중국 영토 만주에서 우리의 정식군대가 일본군 부대를 궤멸시킨, 승리의 싸움이었던 그곳에 ‘최운산의 대한북로독군부’가 있었던 것이다. 러일전쟁과 중일전쟁에서 이겼던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 재산을 다 바쳐서 평생 옳은 일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최운산 장군과 그 형제들의 애국심이 아니었으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후손들과 역사학자들이 최운산 장군과 그의 형제들이 대한북로독군부의 총사령관이었음을 밝히고 주장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만을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도 최운산 장군의 이름은 새롭게 다가왔다. 역사학자들은 자료를 통한 철저한 고증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최운산 장군의 업적을 확인하고 대중에 알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해왜란이라는 8월! 역사적 인물을 찾아내어 민족을 위해 살았던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며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운산 장군의 만주 봉오동전투 재조명에 관한 학술발표는 오는 8월 14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되는 3.1운동 100주년과 학생독립운동 90주년 기념 학술대회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와 독립운동’에서 이뤄진다.
김미경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