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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독립유공자 후손이 되찾은 재산 ‘0’… 친일파 재산환수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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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16 11:15 조회6,5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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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인 이덕남 여사. 연합뉴스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인 이덕남(76) 여사는 지난 6월 시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법정 싸움에 나섰다. 단재 선생이 1905년부터 중국 망명 직전까지 살았던 서울 삼청동의 집터를 돌려 받기 위해 현 소유주인 불교재단(소유권 이전)과 국가(손해배상)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가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이 땅을 사실상 압수했다는 것이 후손들의 주장이다.

이덕남 여사의 소송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우선 광복 74년이 지나도록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빼앗긴 재산을 독립유공자가 되찾은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담은 소송이다. 2006년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환수 작업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독립유공자의 재산을 되찾은 사례는 전무하다. ‘친일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해소됐을지언정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은 여전히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일제에 빼앗긴 독립운동가의 재산을 후손에게 돌려주는 것은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예우하는 방법이라는 의미에서도 주목 받는 소송이다. 이덕남 여사는 “이완용이나 송병준 같은 친일파 후손들은 해방 후 재산을 되찾았으나 정작 독립운동가들은 일찌감치 조선을 떠나 국적이나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재산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독립운동가에 대한 마땅한 예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거주하다 작년 4월 한국으로 이주했다는 이 여사는 “2009년에 이르러서야 시아버지의 국적이 회복됐고 이제는 재산 회복을 통해 독립유공자들의 권리를 되찾고자 후손들을 대표해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독립운동가 예우와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정부 당국의 역할을 촉구했다. 

그 동안 개별적 소송을 통해 독립유공자의 재산을 찾으려는 후손들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원에서 승소해 재산을 돌려받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2년 독립운동가 김용배씨의 후손들이 강원 양양군 임야 3,302㎡를 소유했다가 일제에 강탈당했다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중앙지법 한 부장판사는 “친일파 후손들이 20~30년 전부터 소송을 통해 소유권을 회복한 사례들은 있지만 독립유공자들이 승소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재산을 남긴 독립운동가들이 많지 않은 데다 재산을 소유했다는 사실과 빼앗긴 경위까지 모두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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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준 기자

이런 까닭에 정부가 나서서 자료 수집을 돕고 직접적인 보상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특별법 제정으로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환수 작업이 이뤄진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2006년 국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이후 4년 동안 168명의 토지 약 1,300만㎡를 국고로 환수했다. 친일 후손들은 조사위 결정에 불복해 국가귀속취소 소송이나 특별법에 대한 위헌 소송을 청구했지만 대부분 패소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관련 소송 97건 가운데 96건이 종결됐고, 승소율은 97%에 이른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2006년 17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독립유공자 피탈재산의 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됐다. 법안에는 독립운동가 피탈(被奪) 재산을 일본의 국권침탈 전후부터 1945년 8월14일까지 조선총독부 등 일본제국주의 통치기구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독립유공자로부터 강제로 빼앗거나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사정(査定)을 받지 못한 토지ㆍ건물ㆍ임야 등으로 규정하고, 정부가 직접 보상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정부는 국회 의뢰로 이뤄진 두 차례(18ㆍ20대 국회) 실태 조사에서 모두 “대상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말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단체 등을 통해 신청한 8건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 “독립유공자가 ‘독립운동으로 인하여’ 재산을 피탈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거나 재산 피탈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이 부재하다”고 봤다. △보상 재원 마련과 △소급입법에 따른 위헌성 시비 등도 국회 통과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두 번이나 부정적인 조사결과가 나오니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20대 국회에서도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재 선생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제처장 출신 이석연 변호사는 “조선총독부의 권한을 물려받은 정부가 해방 후에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져버려서 벌어진 일인 만큼 이제라도 보상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한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일제에 억울하게 빼앗긴 재산을 되찾겠다는 후손들의 노력에 국가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부가 피탈재산 실태 파악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