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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오마이뉴스] 카이로회담 전후로 보인 이승만의 '훼방외교' 성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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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27 17:45 조회11,3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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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 김성숙 평전 28회] 김성숙의 비판이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서 탄압받게 된 빌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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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로회담에 참여한 3개국 영수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을 위해 모인 3개국 영수들 (왼쪽부터 중국의 장제스,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 독립기념관


김성숙은 카이로회담을 전후하여 보인 임시정부의 주미외교위원회 위원장 이승만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면서 비판하였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서 탄압받게 된 빌미가 되었을지 모른다.

중국정부의 주선으로 유엔 창립총회에서 한국임시정부를 옵서버 자격으로 초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임정은 재미중이던 이승만 씨를 단장으로 선임하여 총회에 참석하도록 하였다. 유엔총회가 끝난 후, 중국대표단의 한 사람인 동필우(?必武)씨의 보고에 의하면, 이승만 씨는 임정대표로 참석하여, 맹렬한 반소활동(反蘇活動)을 벌였다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모로토프를 단장으로 한 소련대표단은 임정에 대해서 아무 악의나 적의를 가진 바 없었는데, 이 소위 '반소전단(反蘇傳單)'이 살포된 후로는 그 태도를 일변하여, 임정은 중국 국민당의 주구인 반소 특무기관이라고 지적하고, 유엔총회를 파괴하려는 반동적 행동이라고 규정하였다 한다.…
 


임정은 비록 옵서버 자격이라도 유엔총회에 참가하게 된 것을 크게 다행한 일로 생각했던 것인데, 이것이 이승만 씨의 맹목적 반소활동에 의해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필자는 이 사태의 중대성을 절감하고, 즉시 조소앙ㆍ김원봉ㆍ장건상 제씨와 상의하고, 김구 주석에게 임정 국무위원회의 즉각 소집을 요청하였다. 이 회의에서 필자는 다음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1. 이승만 씨를 주미외교위원회장으로부터 면직할 것.
2. 정부는 이승만 씨의 맹목적 행동에 관해서 미ㆍ소 정부에 대해서 적당한 해명과 사과를 할 것.
3. 정부는 해외 각지에 산재한 각종 반일혁명단체의 대표자를 소집하여, 비상민족대표자대회를 조직하고, 이 대회에서 의정원을 확대 개조하고, 국무위원회를 개선하여 임정을 미주ㆍ만주ㆍ시베리아 등지에 산재한 반일 혁명대중의 기반 위에 수립하도록 할 것.

이 국무위원회의에서 다수표결에 의하여 이승만 씨의 면직은 처리되었으나, 다른 2ㆍ3항에 대하여는 장시간 논의 끝에도 결말을 못보고 말았다. 필자는 이에 분개하여 국무위원의 사퇴서를 김구 주석에게 제출하고, 충칭시에서 수십 리 밖에 있는 판시(磻溪)라는 별장지대로 이주하여 잠시 피서와 휴양을 가졌다. (주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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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정국 세 지도자. 왼쪽부터 김규식, 이승만, 김구.  ⓒ 위키피디아  

당시 소련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미ㆍ영은 소련을 끌어들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판국에 이승만은 맹목적인 반소운동을 전개하고, 소련을 적으로 만들었다. 해방 후에도 이같은 노선을 지속하여 국가의 재앙으로 만들었다. 정치의 실패는 복원이 가능하지만 외교의 실패는 국가의 재앙이 된다고 했다.

이 문제와 관련 김성숙의 회고를 더 들어보자.

이승만이는 그때 어떤 처지에 놓여 있었느냐 하면 미국에서 그 사람은 본래 공화당 쪽하고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때 공화당에서 민주당에 대한 반발이 굉장히 심할 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공화당의 충동을 받아가지고 굉장히 나쁜 짓을 많이 했어요. 샌프란시스코회의에서 말이지. 나중에 동필무가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이제는 너희 다 틀렸다. 이젠 모든 일이 다 틀렸다" 뿐이야.

그동안 내가 동필무나 주은래와 가깝게 사귀면서 그들을 통해 소련과 임정과의 관계를 많이 좋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지. 그래 중경에서 소련대사관이 리셉션을 베푼 때가 있었는데 임정 요원들도 많이 청했었지. 중공 친구들은 소련이 임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니까 이런 기회를 통해 임정을 이해하도록 중간에 서서 애를 쓴 것이지.

그런데 동필무 얘기로는 이승만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모두 망쳐 버렸다는 거야. 무슨 얘기냐 하면, 샌프란시스코회의에서 이승만이가 단장이라 해 가지고서 삐라를 돌리고 성명서를 내고 했는데, 소련이 1945년 2월에 열렸던 얄타회담에서 한반도를 다 팔아먹었다고 야단을 치는 내용이더란 거야. 이런 짓을 했는데, 웬 여자가 돌리드래요. 그때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동필무 자기 자신도 그것을 받았다는 겁니다.

자, 이래 놓으니, 그때 소련은 전승국으로서 참가할 때이고 소련 대표단장 몰로토프 ( Molotov) 외상은 굉장한 우위를 과시할 때였거든. 몰로토프가 화가 나서, "이게 뭐냐?"고 집어던지고, 화가 굉장히 났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결국 소련이 임정을 굉장히 반대하고.

그러니까 그때 공화당으로서는 민주당을 곤란하게 만드느라고 이런 짓을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승만이 앞장서서 그런 일을 했거든요. 자, 그래 놓으니 그 동안은 그래도 임정에 대해서 소련에서 좋게 생각을 했는데, 아! 갑자기 그런 일이 떡 나타나니까 소련에서 그만 화가 났지.

소련은 그때 『전쟁과 공인계급(工人階級)』이라는 외교 잡지를 발간했는데 거기에다가 임정에 대한 그런 것을 써냈는데 욕을 무지무지하게 했어. 그 잡지는 소련말로 된 것인데 중국에도 다 나돌고, 그래서 임정은 꼼짝 못하게 됐어요. 이런 일을 중국 대표단이 돌아와서 다 얘기했지. (주석 7)

주석
6> 앞의 책, 87~89쪽.
7> 『이정식 면담록』, 122~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