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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오마이뉴스] 혼란스런 해방정국, 김성숙의 선택과 집중도 혼돈 겪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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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03 17:21 조회10,7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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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 김성숙 평전 35회] 그는 임시정부와 결별하고 민전에서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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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형기록표의 김성숙 선생 수형기록표의 김성숙 선생  ⓒ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감옥에서 나온 김성숙은 '민전'에 참여했다.

김원봉ㆍ장건상ㆍ성주식과 함께였다. 민전을 이끄는 공동의장은 여운형ㆍ김원봉ㆍ박헌영ㆍ허천ㆍ백남운, 김성숙은 성주식ㆍ장건상과 함께 부의장에 선임되었다. 이들 외에 홍남표ㆍ이여성ㆍ유영준ㆍ정노식ㆍ윤기섭ㆍ백용희 등이 부의장단에 선출되었다. 민전 창립당일 이여성이 낭독한 김성숙 등 4인의 민전참여 공동성명서 요지이다.

우리는 비상정치주비회에서 탈퇴할 때 좌우 양익의 편향을 지적하고 단결, 합작을 주장했다. (중략) 그러나 비상국민회의에서는 돌연히 비민주적방식으로 최고정무위원회를 선출한 뒤 그것을 남조선대한민국대표민주의원으로 변장하였다. 이는 민주주의 단체를 포괄한 민전과의 통일을 완전히 거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질적으로 다수의 민주주의 단체를 포괄한 민전에 단연히 참가하여 민주단결의 노선을 밝히는 동시에, 우리는 계속하여 민주주의 단체와 협력하여 좌우 양익의 통일, 단결로 자주적 통일정권 수립을 위하여 끝까지 노력하려 한다. (주석 13)

이날 김성숙은 자신이 비상국민회의를 탈퇴한 까닭은 "거기에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비상국민회의가 민주의원으로 탈바꿈해 이승만과 김구 두 사람을 영수로 추대했는데, '영수란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일컫는 데 쓰이는 말'이라며, 비상국민회의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다소 흥분 섞인 어조로 비상국민회의를 비난하였다." (주석 14) 하지만 '민전' 역시 김성숙이 기대했던 바 대로 해방정국을 주도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거기서는 뭐 의장단의 한 사람이라고 해서 회의할 때나 참가하고 그랬지요. 민전은 그저 공산당이 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내가 그때 공산당하고 내부에서 싸움을 많이 했어요. 내가 전주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온 직후인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폭동이 일어났는데, 공산당이 그때 급했어요.

그래 민전 의장단이 좀 나서서 하지에게 교섭을 해보라는 거야. 그래 나는 단연 반대했어. 폭동이 어떻게 되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판에 하지에게 무슨 얘기를 하느냐? 이때 공산당하던 사람들이 영어 하나 똑똑히 하는 놈이 없었어요. 그래가지고 지금 미군이 통치를 하는 상황에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고 소리질렀지. 공산당하던 사람들이 그때 세계 정세에 뭣인지도 모르고. (주석 15)


해방정국은 그야말로 정파간에 이념과 이해관계가 뒤얽히고 이합과 집산이 뒤따르는 형국이었다. 혼란ㆍ혼돈기에 김성숙의 선택과 집중도 혼란과 혼돈을 겪었던 것 같다. 그는 1946년 11월 '민전'을 떠났다.

민전회의라는 것이 늘 짜고 나와서 하니 나는 그게 싫더군. 공산당놈들이 미리 토의해서 결정해 놓은 것. 이걸 우리는 앉아서 민전 이름으로 결정해 주는 것이야. 그때 내가 여운형 씨를 자주 만났어요. 내 정견을 주욱 얘기했더니 참 옳다고 해요. 세상에서 말하는 중간 노선을 걷자는 것이었어요. 그래 민전을 함께 탈퇴하기로 하고 나왔지요.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47년 4월에 그이와 근로인민당 즉 근민당을 함께 조직했지요.

나는 이때도 좌우합작을 주장했어. 내가 원래 민전에 들어갈 때도, "민전은 문호를 개방해 모든 양보와 타협으로 우익 각 당파와 합작해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었어. 그랬었는데 민전의 정책이 점점 좌익소아병적으로 수행되어 민족적 단결은 고사하고 민족의 분열을 더욱 격화시키기에 탈퇴했던 것이지.

그러니 근민당을 새로 하면서 좌ㆍ우 합작의 깃발을 들지 않을 수 없었지. 나는 그래서 여운형 선생과 김규식 박사가 추진하던 좌우합작운동을 적극 지지했어. 좌우합작위원회를 민족통일전선으로 재편성하자고 주장하기도 했고. (주석 16)


권위주의와 당파성을 극히 싫어했던 그는 임시정부와 결별하고 민전에서도 떠났다. 따라서 딛고 설 땅이 별로 없었다. 자고나면 새로운 정파가 생기는 시기여서, 그를 욕심내는 단체가 많았으나 당분간 정세를 지켜보기로 한다.  


주석
13> 김재명, 앞의 책, 444쪽.
14> 앞과 같음.
15> 『김성숙 면담록』, 138쪽.
16> 앞의 책, 138~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