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 김성숙 평전 33회] 김성숙은 친소반미의 독립도, 친미반소의 독립도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 신탁통치 반대시위 1945년 12월 모스크바3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 광경 ⓒ Public Domain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싸고 좌우가 대립하고 임정요인들도 의견이 갈렸다. 김구 중심의 우파와 김규식ㆍ김원봉ㆍ김성숙 등의 좌파로 나뉘었다.
김성숙은 "자주ㆍ민주ㆍ통일ㆍ독립의 4대원칙"을 제시하면서 친소반미의 독립도, 친미반소의 독립도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를 위해 내부의 자주적 단결을 강조하여 설득을 벌였다.
귀국해서 가만히 돌아보니 큰일이 났어요. 38선이 막히고, 좌ㆍ우 극단파들이 바짝 열을 내며 난동을 부리는 판이야. 하나는 오직 미국을 배후국으로 해서 소련을 반대하고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만이 우리나라가 자주독립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을 반대하고 소련에 의지해서 자주 독립을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가지고 한민당하고 조선공산당이 한창 싸우지 않았어요? 그 꼴을 보니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요. 좌고 우고 하기 싫어요. 그래 내가 조선민족해방동맹 이름으로 성명을 냈어요. 나는 좌와 우를 다 반대한다. 우리는 미국과 소련에 대해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이때 나는 박헌영이도 많이 만났지요. 박헌영을 만나보니 기가 막힌 극좌파입니다.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세계 정세니 국가니 뭐니 알 턱이 없습디다. 그저 공산당과 소련, 이런 생각만 하지 도무지 다른 안목이 없어요. 그런 사람이니 그와는 토론할 여지가 없어요. 나는 그 사람에게 아주 실망했어요.(주석 7)
미군정은 남한에서 임시정부의 존재와 여운형이 조직한 조선인민당(건준의 후신)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1946년 2월 미군정사령관의 자문기관으로 남조선민주의원(민주의원)을 설치하였다. 의장 이승만, 부의장 김구ㆍ김규식이 선출되고, 좌익계를 제외한 인사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약법 3장' 등 기회 있을 때마다 통합을 주장했던 김성숙은 이같은 처사가 크게 못마땅했다. 임정이 좌우 각 정당 대표자들로 비상정치회의를 조직하고 이 회의에서 다시 비상국민대표대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가 민주의원이라고 군정의 자문기관으로 그걸 만들어 놓았어요. 유수한 지도자들을 망라해서 민주의원을 만들었는데, 그 민주의원 만들 때 임정 요인들을 거의 전부 가담을 시킨단 말이요. 내가 그걸 반대했어요. 그래서 임정 국무회의에서 큰 싸움이 났지요.
왜 그렇게 되었었느냐 하면, 내가 들으니까 김구와 김규식이 모두 가담하기로 동의했다는 겁니다. 이승만과 타협이 되었다는 소문도 들리고. 내가 이렇게 반대했어요. 만일 당신들이 민주의원에 들어가려고 하면 민중 앞에 임시정부를 해체한다는 것을 공고하라.
그 다음에 들어간다면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임시정부라는 게 뭐냐? 본래 우리 민족이 우리를 정부라고 뽑아 준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저 우리 스스로 민족의 의사를 대변한다면서 정부를 만들어 정부 행세를 해 온 것이 아니냐?
그러다가 돌아와서는 주석이다 부주석이다 국무위원이다 하는 직함을 앞세워 외국 군정의 자문기관으로 모두 기어들어간다면 이걸 역사적으로 기가 막힌 망신이다. 나는 절대로 가담할 수 없다. 이랬더니 싸움이 벌어졌어요. (주석 8)
▲ 반탁 운동 임시정부 계열이 중심이 된 신탁통치 반대운동도 경교장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사진에 당시 경교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은 경교장에 전시된 사진을 재촬영한 것. ⓒ 경교장 사진 자료
자력으로 쟁취하지 못한 해방정국은 그레고리 헨더슨의 어법을 빌리면 '소용돌이의 정치'였다. 국제적으로는 미ㆍ소의 이해대립, 국내적으로는 임정과 이승만, 좌익과 우익, 민족세력 대 친일세력이 대결ㆍ대치하는 복합 함수관계였다. 그만큼 변수들이 많았다.
김성숙은 임정요인들의 민주의원 참여에 격분하였다. 좌파 계열을 무시한 채 우파 만의 참여는 종국적으로 민족분열을 불러오게 되고, '임정이 군정의 들러리'로 전락한다는 우려였다. 다음은 경교장 국무회의 발언이다.
그때 내가 막 떠들었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민족을 대표해서 정부 행세를 하고 다니다가 외국 군정의 자문기관으로 기어들어간다면 국무회의도 그만두고 말아라. 회의는 무슨 회의냐? 무엇으로 국무회의를 여는 거냐? 개인 자격으로 들어간다면 임시정부를 없애고 들어가라. 이게 뭐냐?"
막 떠들었지요. 그리고는 술 잔뜩 마시고 잤지요. (주석 9)
주석
7> 『김성숙 면담록』, 123쪽.
8> 앞의 책, 134~135쪽.
9> 앞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