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판기획자의 노트]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의 약산 김원봉 추적기
작은 인문·철학 출판사에서 기획자로 일했습니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그 배경이 궁금한 독자 분들을 위해 한 사람의 출판기획자로서 직접 기획한 책들의 탄생 비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기자 말
올해 1월, 내가 몸 담고 있던 출판사 필로소픽에서 <임정로드 4000km>를 출간했다. 2019년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출간한 이 책은 <오마이뉴스> 청년 기자들이 임시정부의 이동경로를 순서대로 따라 걷고 온 뒤 펴낸 국내 최초 임시정부 여행 가이드북이다.
꿈에 그리던 책이 출간됐으니 이제 샴페인 터뜨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대표 저자였던 김종훈 기자는 오히려 "헛헛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었다. 임정로드를 걷는 과정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모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 김종훈 기자에게 헛헛함을 안긴 장본인은 바로 '약산 김원봉'이었다.
약산 김원봉을 찾아 떠나다
▲ 약산 김원봉 (1898~1958) ⓒ 위키백과
의열단장, 조선의용대 대장,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 굵직굵직한 직책을 역임했던 김원봉. 그러나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가 아니다. 월북하여 김일성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올해 의열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서훈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자유한국당과 재향군인회, 조선일보 등 보수 정당과 단체, 언론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논란이 한참 불거지던 와중에, 오매불망 오빠가 당당히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만을 바랐던 막내동생 김학봉 여사가 끝내 오빠의 서훈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아마 그때 김종훈 기자는 결심했던 것 같다. 김원봉의 흔적을 추적하기로. 그가 정말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을 자격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임정로드 4000km>가 출간된 후 전국 순회강연을 다니랴, 임정로드 탐방단을 이끌며 중국 대륙을 활보하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밤잠 줄여가며 틈틈이 취재하고 집필한 결과, 마침내 국치일(8월 29일)을 맞아 <약산로드 7000km>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국내 최초 김원봉 역사기행 가이드
▲ 의열단 100년, 약산 김원봉 추적기 <약산로드 7000km> 표지 ⓒ 필로소픽
<약산로드 7000km>는 김원봉이 태어났던 밀양에서부터 지린, 베이징, 상하이, 난징, 광저우, 우한, 구이린, 충칭, 그리고 평양에 이르기까지 김원봉의 생애를 따라가며 그의 발자취를 소개하는 책이다. 의열단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과 의열단을 소재로 한 책들이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은 전작이었던 <임정로드 4000km>와 마찬가지로 인문서가 아닌 여행 가이드북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책들과 결을 달리한다. 저자와 출판사 모두 그저 눈으로 한 번 읽고 덮는 책이 아니라, 눈으로 한 번 읽고 발로 걸으며 두 번 읽는 그런 책으로 읽히기를 바라며 만들었다.
집필 과정도 남달랐다. <임정로드 4000km>가 출간된 직후,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이 책을 들고 임정로드를 걷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이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내왔다.
천녕사에 표지석 하나 세우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을 듣고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천녕사에 손수 만든 표지판을 설치하고 사진을 보내왔다. 임정로드를 걷고 있던 한 대학생은 황포군관학교 유적지에서 김원봉의 이름 석 자를 발견했다며 인증샷을 보내오기도 했다. 저자가 여러 번 찾아갔어도 발견하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그렇게 시민들과 함께 만든 책이기에 이 책의 의미는 더욱 값지다.
▲ 중국 광저우 황포군관학교 입구에 세워진 비석에 새겨진 "김약산(金若山: 김원봉)". 임정로드를 걷고 있던 한 대학생이 현장에서 발견해 보내온 인증샷이다. ⓒ 강은혜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일생에 한 번은 약산로드를 걸어보라는 것이다. "걸으면 길이 된다"는 말은 <임정로드 4000km>가 출간됐을 때 우리가 독자들에게 던진 메시지였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임정로드를 걷고 있다. 사람들이 걸으니 길이 되었고, 지금은 여권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관광지가 됐다.
하지만 약산로드로의 여정은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다. 김원봉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학생들을 훈련시켰던 '난징 천녕사'는 택시를 타고 가지 않으면 이동할 방법이 없고, 만주 지린에 있는 의열단 창립지 '광화로 57호' 앞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어찌 여기뿐이랴. 김원봉과 관련된 유적들의 실태가 대부분 이렇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시민들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약산로드 7000km> 한 권씩 들고 우리 모두 약산로드 한 번 다녀오자고.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씩 걷다 보면 이곳 역시 길이 되지 않겠는가.
김원봉의 온전한 실체에 최대한 접근하다
김원봉의 온전한 실체에 최대한 접근하려 노력했다는 점도 이 책이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이다. 그동안 영화 <암살>과 <밀정> 그리고 드라마 <이몽> 등 대중 매체를 통해 소개된 덕분에 김원봉이라는 이름 석 자는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김원봉의 모습이 과연 그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비밀결사의 수장답게 한 자리에서 2시간 이상 있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신출귀몰했던 사나이였다. 월북 후의 행적은 김일성 정권의 '김원봉 지우기'로 인해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대중 매체에서 그려진 김원봉은 역사적 상상력이 첨가된 허구의 캐릭터에 가까웠다. 저자는 현장을 뛰면서, 사료를 뒤적이면서, 후손들을 찾아다니며 베일에 가려진 김원봉의 실체를 추적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연스레 서훈 논란의 쟁점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깊이 접근한다.
"과연 김원봉은 남한에 간첩을 보냈을까?"
1954년 1월 26일자 <경향신문>의 기사가 출처인 이 논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사 속 김원봉의 직책이 틀렸고, 후속 보도가 없다는 점을 들어 '가짜뉴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또 "6.25 전쟁에 참전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는 세간의 주장에 대해서도 '보리 파종' 실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받은 훈장임을 밝혀낸다.
"빨갱이와 공산주의자라는 오해, 모든 것이 현실주의자 김약산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와 기록 없이 나온 설이다. 약산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과정, <약산로드 7000km>를 취재하고 집필하며 마지막까지 더 힘쓴 이유다." - p.354
▲ 김원봉이 남파간첩을 내려보냈다는 1954년 1월 26일자 <경향신문> 기사 ⓒ 경향신문
미완의 파트 '평양', 언젠가 개정증보판으로 완성해야
기획자이자 한 사람의 독자로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다. 김원봉이 생애 마지막을 보낸 '평양' 파트다. 김원봉 생애 말년의 흔적을 최대한 추적했지만, 평양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현실 탓에 저자 역시도 "모르겠다, 솔직히 북한 어디로 가서 약산의 흔적을 추적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약산로드 7000km>의 여정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곳이다.
물론 이는 저자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한계이기도 하다.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저자는 분명 한달음에 평양으로 달려가 김원봉의 흔적을 취재할 것이다. 그가 미완의 파트 평양을 완성하여 <약산로드 7000km>의 개정증보판을 낼 수 있도록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풀지 못한 약산의 생애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완전한 자주독립, 우리는 약산 김원봉이 필요하다."
저자와 출판사가 고민을 거듭해 내놓은 <약산로드 7000km>의 카피다.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 침략과 '토착왜구'로 일컬어지는 잔존 친일 세력들의 망동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여전히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서글픔에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목표를 세웠다. "<반일 종족주의>만큼은 뛰어넘고 싶다"는 것. 저자는 이를 '자존심 문제'라고 했다. 출간 직후 신간 브리핑을 위해 서점 MD를 만난 자리에서 나 역시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김원봉을 서훈하자는 목적으로 이 책을 낸 것은 아니다. <반일 종족주의>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 대한민국 최고의 명당이라고 하는 국립묘지에 친일파들이 잠들어 있는 현실, 그런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은 빨갱이라 조롱받는 이 현실이 온당한 것인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심을 다했다. 이제 독자들과 함께 약산로드를 걷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