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 김성숙 평전 37회] 미군정 비판하다 군정재판에 회부되기도 한 김오성의 평가
▲ 운암 두군혜 가족사진. 김성숙의 중국가족과 동지들. 가운데 김성숙과 두군혜 부부가 서있고, 오른쪽이 박건웅이다. 운암 두군혜 가족사진. 김성숙의 중국가족과 동지들. 가운데 김성숙과 두군혜 부부가 서있고, 오른쪽이 박건웅이다. ⓒ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해방공간에서 문필활동으로 명성이 높았던 인물 중에 김오성(金午星, 1908~?)이 있다.
평북 용천 출신으로 도쿄에서 니혼대학(日本大學)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농민』, 『신인간』 등을 발행했으며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조선인민당, 조선문학가동맹, 민전 등에 참여한 진보적 문인이다.
『조선인민보』 편집국장으로 미군정을 비판하다 군정재판에 회부되기도 한 김오성은 1946년 서울 대성출판사에서 『지도자군상』이란 인물 평전을 펴냈다.
여운형ㆍ박헌영ㆍ김일성ㆍ허현ㆍ김두봉ㆍ김원봉ㆍ무정ㆍ장건상ㆍ성주식ㆍ이주하ㆍ김성숙ㆍ홍남표ㆍ유영준ㆍ이여성ㆍ이강국ㆍ이관술ㆍ최용달ㆍ김세용(게재 순) 등 좌파계열 인물들을 평가하고 있다.
▲ 중산대학 시절 김규광(김성숙) 중산대학 시절 김규광(김성숙) ⓒ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그는 1947년 월북, 제1기 최고인민회의 남조선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가 1953년 종파분자로 지목되어 숙청되었다. 김오성의 '김성숙론'은 그의 중국에서 독립운동과 해방공간의 활동상을 정리하고 있다. 해방공간시기, 그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는 터이라,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지만, 여기서는 한 대목을 골랐다.
정치가로서의 김성숙 씨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크다. 국내외의 혁명가들이 그 오랜 지하투쟁의 관습인가? 실상 정치적 공작에는 졸렬함이 드러나고 있다. 오늘의 조선의 건국과정이, 또는 혁명적 과정이 정치투쟁과 아울러 정치적 공작이 필요하다면, 이 정치적 공작에 있어 해외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김성숙 씨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이다. 앞으로 씨의 이 방면에 대한 노력을 바라는 바이다.
김성숙 씨는 조선을 '됴션'이라고 되게 평안도 사람의 태를 숨김없이 드러내거니와 그 성격도 평안도인적인 솔직 쾌활한 면을 갖고 있다. 그는 버스러진 이마 주름살이 잡히도록 항상 무엇을 사고하는 듯, 심모원려가 있는 사람같다.
사실 그는 그리 단순한 인간은 아닌 듯 싶다. 정치가형의 인간에게서 흔히 보는 바와 같이 그에게는 깊은 사고와 원대한 계획이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이 이를 완고한 정객들에게서 보는 바와 같은 그러한 모략성을 가지지 않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것은 첫째로 그가 솔직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
둘째로는 세계적인 양식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이리라.
그러므로 그의 심사원려는 항상 전술의 연마를 위한 것이며, 이것 때문에 그의 인간적인 솔직성이 침해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김성숙 씨는 인간적으로 어디까지나 호한(好漢)이요, 솔직한 사내요, 쾌남아이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인민 대중에게 친할 수 있고, 또 인민 대중의 신뢰를 살 수 있는 인간적 조건인 것이다. (주석 19)
김오성이 지적한 대로 그는 '솔직한 쾌남아'이지만, 정치적 모략이나 음모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뒷거래를 할 줄 모르고 부정한 타협을 배척한다. 해서 주류에서 멀어졌다.
주석
19> 김오성,『지도자군상』, 120~121쪽, 대성출판사,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