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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뉴시스] 일본군서 친일행위 후 국군 합류 창군 원로 10인 현충원 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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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5-28 13:16 조회7,80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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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여권 일각에서 국립현충원에 있는 친일파 무덤 파묘(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하여 무덤을 파냄)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립현충원에 묻힌 군인들의 행적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스스로 일본군에 가담해 일본을 위해 싸운 뒤 6·25전쟁 참전 등을 계기로 국군에 합류해 고위직까지 올랐던 인물들이다.

28일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국군 창군 원로로 꼽히는 이들 10명이 현충원에 묻혀 있는데 이들은 모두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이응준은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조선군 대구사령부, 중국 칭다오교육대, 서울 용산정차장사령부 등에서 일했다.


그는 조선 청년들에게 일본군인으로 지원해 천황과 일본제국에 충성할 것을 선동했고 학생들에게는 학도병으로 지원할 것을 홍보했다.


대한민국 수립 후 초대 육군참모총장(대령)에 발탁됐으며 국군에서 최초로 장성 계급에 올랐고 체신부 장관까지 지냈다.

백홍석은 일본군 경성 육군사령부 과장을 역임하는 동안 조선인 병력 동원을 담당했다.


그는 1948년 육군 특별부대사령관으로 임명되는 등 국군에서 요직을 거쳤고 1952년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신태영은 일본 육사 출신으로 용산정차장 사령관으로서 병참 보급과 관련한 일을 수행하면서 병력 동원과 선전 선동에 가담했다.


그는 우리 군에서 국방장관과 재향군인회 회장, 민병대 총사령관을 지냈다.

신응균은 신태영의 아들로 일본 육사 졸업 후 태평양 전쟁에 중포부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그는 미 군정 시기에 대한민국 국군 장교가 됐고 포병사령관 시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상관이었다.


5·16쿠데타 후 국방차관에 임명됐으며 초대 국방과학연구소장을 맡았다.

이종찬은 일본 육사를 나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에 참전했다. 광복 후 국군에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등을 역임했고 이후 국방장관, 9~10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신현준은 일본이 만주국을 수립하면서 세운 장교 양성 기관인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우리 항일조직을 소탕하는 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 활동했다.


해방 후 귀국해 해병대 창설을 주도해 초대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했다.

김석범 역시 봉천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에서 항일조직을 탄압했다.


광복 후 국군 해군 중위로 임관해 해군통제부 참모장과 방위사령관 등을 지냈다. 재2대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재향군인회 부회장과 성우회 부회장을 지냈다.

김백일은 간도특설대 창설요원으로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복무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진압했다.


광복 후 국방경비사관학교 교장, 육군보병학교 교장, 제1군단장 등을 역임했다.

송석하도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만주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와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 됐다. 5·16 쿠데타 후 한국국방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김홍준은 간도특설대에서 항일조직 토벌에 나섰고 광복 후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에서 근무했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들에게 6·25 때 공적이 있으니 삼족을 멸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삼족을 멸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며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사람들이 동네 선산이나 납골당에 묻혀야지 어떻게 국립현충원에 묻힐 생각을 하나"라고 말했다.

반면 보수진영은 이들을 공산화를 막아낸 전쟁 영웅으로 보고 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27일 보도자료에서 "일제의 강압적 체제 아래서 불가피하게 일본군에 입대해 복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 반민족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평가"라며 "이는 해방 후 창군에 참여해 6·25전쟁에서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고 공산화를 막아낸 전쟁영웅들의 명예를 짓밟는 반민족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재향군인회는 또 "이런 분들이 친일파로 매도돼 마음의 고향인 국군묘지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은 지나친 억지주장이며 국립묘지에 안장된 분들을 파내야 한다는 것은 호국 영령을 2번 죽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