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에 있는 친일파의 무덤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4일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가 진행한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 세우기' 현충원 탐방 행사에 참여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서울 동작구을, 지금은 국회의원)은 "친일파 묘역을 파묘하는 법률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병기 의원도 "파묘 문제를 법으로 매듭짓지 않으면 갈등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28일 '백선엽 장군이 현충원에 못 간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백 장군이 사후 현충원에 안장되더라도 뽑혀나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라며 반발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백 장군님은 6·25 전쟁 영웅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구한 분이고, '6·25의 이순신'이라고 평가해도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법에 따라 조금이라도 피해를 본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친일파를 이장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2009년 정부에 의해 친일파로 공인된 백선엽 역시 현충원에 잠들 수 없다.
이에 대해 이번 현충원 탐방을 기획한 민성진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오마이뉴스>와 만나 "현충원 탐방을 한 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파묘 논란은 간단한 문제"라면서 "관련 법안만 통과시키면 끝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민 회장은 "지금이 기회다,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미래통합당도 변해야 산다는 걸 공유하는 상황이다, 의원들이 나서면 된다"라며 "서울현충원이 동작구에 있어 지역구 의원인 이수진 당선인, 김병기 의원과 함께 현충원 탐방을 진행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달 28일 민성진 회장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
- 파묘 논란이 커졌다.
"현충원 파묘 관련 다섯 번의 행사 중 이제 첫 번째만 끝냈을 뿐인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논란이 커졌다.
2009년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인한 친일파 중 현충원에 안장된 자들의 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법안이 그동안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그 때마다 제대로 논의 한 번 못하고 폐기됐다."
- 현충원 친일파 파묘, 가능한 일인가.
"인촌 김성수가 부통령 출신이지만 누구나 친일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나긴 싸움 끝에 결국 인촌의 서훈을 박탈하고 그의 호를 딴 도로 이름도 바꿨다.
인촌 서훈도 박탈한 마당에 현충원 친일파 파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략적인 접근만 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인촌의 서훈 취소와 더불어 고려대학교 인근 인촌로 지정을 취소하라고 지속으로 요구했다.
결국 2018년 2월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인촌의 훈장 취소를 의결했다.
- 전략적인 접근이라면?
"현충원 친일파 파묘는 법률적인 문제 때문에 정리를 못했던 거다. 그러니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그 부분을 변경하기 위해 공략해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미래통합당도 변해야 산다는 걸 공유하는 상황이다. 의원들이 나서면 된다.
서울현충원이 동작구에 있어 지역구 의원인 이수진 당선인, 김병기 의원과 함께 현충원 탐방을 진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달 27일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측을 만났다. 내게 분명히 말하더라. 미래통합당은 '친일청산에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미래통합당은 친일청산에 앞장선 김영삼 대통령을 따르는 당인데 왜 친일청산을 반대하겠나. 국가공인 친일파 파묘는 올해 가능할 것이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광복회가 조사한 '친일 행위의 국립현충원 안장 불가 및 이장, 단죄비 설치를 위한 법률(국립묘지법, 상훈법) 개정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질문에 '찬성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당시 미래통합당은 지역구 당선자 84인 중 주 원내대표를 비롯해 정진석·박덕흠·김태흠·성일종·임이자·조해진 의원 등 43명이 찬성 의견을 밝혔다.
질문에 응답하지 않은 이는 권영세·배현진·박대출·김도읍·하태경 의원 등 39명이었다. 권명호·한기호 당선인은 모른다라고 답했다.
- <조선일보>를 비롯해 보수세력은 백선엽을 들고 나와 반대한다.
"얼마나 공부를 안 했으면 우리 군의 뿌리를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이라고 말하나.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다. 만주군 출신 백선엽이 우리 군의 뿌리라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만주군인가. 우리 국군의 뿌리는 엄연하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이다."
백선엽은 2009년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된 인물이다.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공식보고서에 "백선엽은 만주국군 중위로 1942년 소위 임관 이래 일본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고, 1943년부터 간도특설대에서 항일세력을 탄압했다"라고 기록했다.
서울과 대전 두 곳 국립현충원에 있는 국가공인 친일파들과 마찬가지로 백선엽 역시 대한민국 국군 장군 출신이라는 이유로 현충원 안장 자격을 갖추고 있다.
현행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장성급 장교로 전역·퇴역한 뒤 사망한 이와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을 갖는다'고 명시돼 있다.
서울과 대전의 현충원에는 국가가 공인한 11인을 포함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68명이 안장돼 있다. 현충원에 잠든 국가공인 친일파 11명은 김백일·신응균·신태영·이응준·이종찬·김홍준·백낙준·신현준·김석범·송석하·백홍석이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이들에 대한 이장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중 특히 문제가 되는 인물들이 서울현충원 장군2묘역에 잠든 이응준과 신태영이다. 이들의 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신 지사들과 애국지사 묘역, 독립운동하다 이름없이 죽어간 무명용사들의 위령탑 머리 맡에 있다.
민 회장의 외조부인 운암 김성숙 선생의 묘에서 국가공인 친일파 이응준과 신태영의 무덤까지는 직선으로 80m 거리에 불과하다.
국가공인 친일파 신태영은 대한민국 4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인물로 일본군으로 30여 년 이상을 복무했다. 그 기간 동안 "조선인들은 한시바삐 제국의 신민이 되어 동아시아를 개척해야 한다"면서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안장이)다"라는 말을 <경성일보> 등에 기고하기도 했다.
이응준 역시 일본 육사를 나와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30여 년을 일본 군인으로 복무했고 과정에서 여러 차례 "조선의 청년들이 일본 군인이 돼 전쟁터로 나가 목숨을 바쳐 천황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그의 일본 육사 동기였던 지청천은 1919년 3.1 혁명 후 중국으로 망명 후 훗날 광복군 총사령까지 돼 일제에 대항해 싸웠다. 그러나 사후 이응준의 발 아래에 잠들었다.
*운암 김성숙은?
운암 김성숙 선생은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민성진 회장의 외조부다. 그러나 활동에 비해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의열단과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민족전선연맹, 조선의용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94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백범 김구와 약산 김원봉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헌정사상 처음으로 좌우합작 정부가 탄생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하지만 해방 후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 정권에 항거하다 불운한 말년을 보냈다.
정부 공훈록에 1968년 말년의 운암은 "신민당 지도위원으로 선출됐으나 오랜 가난과 병고에 시달려 고통 받다 친지들의 주선으로 마련한 단칸방 '피우정(비를 피하는 곳)'에서 기거했다"라고 기록됐다.
◎ 오마이뉴스 김종훈기자
☞ [특별기획]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11인 추적(http://omn.kr/1mv5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