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전쟁기념관은 8월의 호국인물로 김홍일(金弘壹)
육군 중장을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김 중장은 대한제국 시기인 1898년 9월23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계몽주의 독립운동 본산이었던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황해도 신천에 있는
경신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그러다 오산학교 출신자들이 항일운동 혐의로 탄압을 당하자 이를 계기로 항일
무장투쟁에 투신했다.
그는 1920년 구이저우(貴州)군 소위로 임관 후 무장투쟁이 치열하던 연해주 대한
의용군사회에서 일했다.
1926년 국민혁명군 소령이 된 후 1927년 용담(龍潭)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1931년에는 상하이 병기창 주임으로서 이봉창·윤봉길에게 폭탄을 제공해 임시
정부 차원 의열 투쟁을 지원했다.
김 중장은 1938년 중일전쟁 만가령 전투 승리를 이끌어 외국인으로서 드물게
국민혁명군 소장으로 진급했다.
그는 임시정부 권유로 1945년 한국광복군 참모장에 취임해 광복군 육성에 힘썼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귀국해 육군 준장으로 특별 임관했고 이듬해 소장
으로 진급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육군참모학교장이었던 그는 6월28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서울 북방에서 분산 철수하는 국군 부대를 수습해 한강 방어선을 구축
했다.
그의 지휘를 통해 국군은 한강에서 6일 동안 북한군 남하를 저지했다.
이를 통해 그는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고 첫 지상군을 한반도에 파견하는 시간을
확보했다.
김 중장은 7월4일에는 제1군단장에 취임해 중부전선 지연전과 낙동강선 방어 작전
을 지휘했다.
이후 육군종합학교장으로서 초급간부 양성에 전념하던 그는 1951년 3월 중장으로
예편했다.
그는 대만대사, 외무부장관, 국회의원, 신민당 대표, 광복회장으로 활동한 뒤 1980년
8월8일 8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정부는 김 중장에게 1951년 7월26일 태극무공훈장을,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수여했다.
그가 타계한 직후인 1980년 8월11일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다음달 6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 행사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