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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충청인뉴스] 나라 구하는 데 남녀 구별 없다면서… '남성' 중심 기록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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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8-06 10:50 조회7,7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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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이 충북에서 문을 열었다. 2018년 행정안전부의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공모사업에 충북도가 내놓은

'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시설 설치 사업'이 선정됐다.


이 사업으로 16인의 여성독립운동가가 전시됐다. 전국 최초로 여성 독립운동

가의 삶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독립운동이 공식적이지 않았잖아요. 숨어서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공식화된

기록이 없어서 신문 기사와 사진, 유족들의 의견을 듣거나 구전을 통해 전해

들으면서 사실에 가장 가까운 사료를 찾고자 노력했어요.

사진도 보면 측면이나 뒷모습밖에 없어요. 흉상을 만드는 것조차도 사진이 안

남아 있어서 자손 중에 가장 (여성 독립운동가와) 닮은 분을 모시거나, 자손들

의 이야기로 이미지를 구현했습니다." - 박현순 충청북도 여성가족정책관

충북에 연고가 있으면서도 애족장 이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운

동가 16명이 전시됐다. 연고지 기준은 포괄적이었다. 출생지가 아니더라도

부모·남편 출생지거나 남편 본적이 '충북'이면 모두 우리 지역 독립운동가로

표현됐다. 

충북도는 남성 중심 독립운동사에 가려 오랫동안 기억에서 잊혀져 온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으나 아쉬움은 남는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시대적 배경인 가부장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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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순 충청북도 여성가족정책관은 "그런 점도 사전에 충분히 우려했었다"며

"다만 너무 범위를 좁히다 보면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록이 너무 협소적

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전했다. 여성 독립운동이 가족 단위

에서 많이 이뤄졌다는 점도 고려됐다. 


이번 충북 여성독립운동가 전시에서 박걸순 충북대학교 사학과 교수의 자문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이전에 <중부매일>에서 '충북

독립운동사 다시보기' 칼럼을 연재했다. 이 칼럼에서 박 교수는 "남편 호적에

따라 충북 출신으로 분류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전시에서 그 의견이 반영됐다. <충북인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박 교수는

"우리나라 여성사의 특징이기도 하다"며 "결혼하면 남편을 적으로 두다 보니

포괄적인 의미에서 충북 출신이라고 할 때 여성의 경우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호주제에 종속된 여성사  

"나라를 구하는 데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이 남긴 말이다. 그는 경기도 구리시에서 태어났다.


16살이 되던 해 춘천에서 유제원과 혼인했다. 시아버지 유홍석은 춘천 의병을

일으켰고, 윤희순도 강원 일대에서 30여 년을 살면서 의병 활동에 가담했다.


30명에 이르는 여성의병단을 조직하고, 8편의 의병과와 4편의 경고문을 제작

의병 활동을 독려했다. 그러다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지원하다 숨졌다. 

윤희순은 나라 구하는 데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고 했지만, 기록에서는

'남성'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가장 오랫동안 의병 활동을 한 지역은

강원도다.


시댁이 강원도에서 의병 가문으로 유명했다. 윤희순의 생가와 묘역도 강원도

춘천시 가정리에 있다. 윤희순은 충북과 무관하지만 독립유공자 공훈록에서

본적이 충청북도 충주으로 기록됐다는 이유로 지역 여성독립운동가로 탈바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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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선 윤희순기념사업회 회장은 "충북에서 선양 사업을 하는 일에 찬성한다"

"우리나라 보훈단체나 지방자치단체가 독립운동가들을 두고 자기 기득권을

주장 하거나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고 전했다.


지역 독립운동가를 선정하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보니 기념사업을 할 때마다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충북도는 사전에 유가족과 상의 끝에 윤희순 전시를 결정했다. 

과거 여성들이 호주제에서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점이 역사 기록에도 반영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연미당도 아버지 고향(충북 증평)을

따라 기록됐다.


대한애국부인회 회장으로 임시정부 선언 민족대표로 나섰던 이화순도 남편

정양필 고향(충북 청원군)을 근거로 충북 여성 독립운동가로 분류시켰다.


이화순은 결혼하고 나서 미국에서 독립자금을 운반했다. 충북에 거주한 적도

없다.


이 밖에도 △박자혜(신채호 부인) △신정숙(장현근 부인) △김수현 (이광의 부인)

남편 호적 기준으로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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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독립운동가 전시는 '진보' 

여성 독립운동가가 주목받게 된 시간이 짧은 만큼 이번 전시는 그 자체로도

우리 사회의 진보를 보여주는 건 사실이다.


가사 노동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여성

독립운동의 지위도 함께 올라갔다. 

독립운동가 사전을 집필하고 있는 장신 한국교원대 교육박물관 전임연구원도

사료 발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찰 자료, 밀정의 보고, 판결문 등으로 독립운동을 확인하는데 부정확한 기록

이 많다는 것이다.


장 연구원은 "제적부를 보더라도 정확한 출생지를 확인할 수 없다"며 "일제 시기

남겨진 판결문에서도 본적지와 주소지를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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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이 어렵다는 특수성도 있다. 시대상에 비춰 봤을 때 여성이

독립운동에서 지위를 가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지금도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집안의 며느리나 아내가 아니면 기록되지 않는 경향이 남아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장 연구원은 "당시 시대상에 비춰 봤을 때 아버지나 남편과 떨어져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여성들이 주로 맡았던

식사나 감시등 직함이 없는 활동은 독립운동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여성 독립운동가 기록은 '재조명'에만 만족해선 안 된다.


사례 발굴이 보다 정확하게 이뤄질 필요성이 있다. 장 연구원은 "지방자치단체는

여성 독립운동가와 고장과의 관계·특수성이 더 잘 드러나도록 하거나, 그 점을

발굴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 충청인뉴스 김다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