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과 만주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세워
- 자손 다 죽고 궁핍한 말년 보내다 숨져
- 화려한 삶 친일파 이완용과 대비시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의 총칼에 목숨을 잃어야만 순국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재산뿐 아니라 가족 전체를 바친 이석영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순국이란 말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박정선 작가가 독립운동가 이석영(1855~1934) 선생의 삶을 담은 장편소설 ‘순국’(사진·푸른사상, 전 2권)을 펴냈다.
박 작가는 앞서 2011년 이석영의 동생이자 독립운동가 이회영(1867~1932)을 다룬 ‘백 년 동안의 침묵’을 쓴 적 있다. 9년 만에 그의 형제와 다시 인연이 닿은 것이다. 이 작품은 우당이회영기념관 측에서 박 작가에게 집필을 제안하면서 창작의 계기가 마련됐다. 국가보훈처는 이석영 선생을 ‘2020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박 작가가 조명한 이석영은 삼한갑족의 가문 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1814~1888)의 양자다. 큰 재산을 물려받았으나 모두 독립운동 지원에 쏟아부었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병탄하자 가족 형제를 이끌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석영 형제들이 전답을 팔아 마련한 돈이 40만 원이었는데,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 원쯤 된다고 한다.
이석영이 교장을 지낸 신흥무관학교는 당시 독립운동의 기틀을 다졌던 곳이다. 졸업생들은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를 비롯한 항일 무장투쟁에 나섰으며, 의열단 다물단 등을 조직해 밀정 처단에도 앞장섰다. 하지만 영웅의 최후는 비극이었다. 이석영의 큰아들은 밀정 처단 활동을 하다 숨지고, 애지중지하던 막둥이 아들은 동생 이회영을 함정에 빠뜨리게 하는 밀정 노릇으로 죽음에 이른다. 혈통을 중시하던 가부장 시대에 이석영은 그렇게 자손 하나 남기지 못했다.
가진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쓴 까닭에 말년 또한 굉장히 궁핍하고 처절했다. 그렇게 바라던 조국의 독립도 보지 못한 채 79세 일기로 상해에서 생을 마감한다. 소설에는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집사 박경만이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른 것으로 설정했지만, 실제로는 국내에 무덤조차 남기지 못했다.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줬음에도 오랜 세월 ‘익명의 독립운동가’로 남은 것이다.
이석영의 쓸쓸한 죽음은 ‘화려한 장례식’으로 삶을 마감한 친일파 이완용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소설은 이완용의 행적을 아주 상세히 다루는데, 여기에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담겼다. “자신의 행적을 드러내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며 ‘독립운동의 본질’을 보여준 이석영과 친일행각을 벌인 이완용의 삶을 독자들이 비교하며 체감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냈지만, 이번 소설은 박 작가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이전 책들은 자식처럼 여겼다면 ‘순국’은 이석영 선생의 유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택배로 책을 처음 받고 사흘간 감히 풀어볼 생각을 못 했을 만큼 조심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이번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독립운동의 험난한 과정을 알리고, 친일행적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과거에서 새싹이 나는 게 미래’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불행한 역사 또한 그저 덮어둘 게 아니라 내면부터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며, 궁극적으로는 화해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박 작가는 소설 ‘유산’과 비평집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을 비롯해 많은 책을 냈으며, 심훈문학상 부산문학상 대상 등을 받았다. 현재는 문예 창작·인문학 강사로 활동한다.
◎ 국제뉴스 민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