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유산 지정 김성수가옥 친일 언급 없이 업적만 나열…강제노역 피해자 합동묘지 나뭇가지만 수북
[일요신문] 올해 3·1절 103주년을 맞았다. 그간 국내에선 친일 잔재 청산, 항일독립운동 유적 발굴 등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항일단체들이 비난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가옥이 서울미래유산으로 남아 있는가 하면,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 조선인들의 묘지 등은 훼손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남아 있는 유적이 역사를 보여준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제는 식민통치의 중추기관으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해 입법·행정·사법·군통수권 등을 손에 쥐고 우리 민족을 탄압했다. 식민통치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의 토지를 빼앗아 자신들에게 적극 동조하는 자, 이른바 친일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모법으로 해 국민징용령 등 각종 통제법령을 시행했다. 국가총동원법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식민지의 인력과 물자 등을 수탈하려고 공포한 법령이다. 많은 조선인들이 탄광·조선소·토목공사장 등에서 일제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광복을 이룬 뒤 이러한 일제 잔재와 친일파를 어떻게 청산할지에 대한 문제가 역사적 과제로 대두됐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뿌리 깊이 박혀 있던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거나 '우리 유산'으로 남겨놓기도 했다.
일부 지자체에선 일제 잔재를 역사·예술적 가치로 판단해 일제 잔재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기도 하다. 반면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담고 있는 장소는 내팽개쳐진 상태로 있기도 하다.
#친일 기록 어디에…‘서울미래유산’ 등록한 서울시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인촌 김성수(1891~1955) 가옥’. 이곳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의 근·현대 유산 중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 자산을 발굴해 보전하는 사업으로 2013년부터 서울시에서 진행 중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 3월 3일 기준 서울미래유산은 총 506개다.
2018년부터 김성수 가옥에 대한 서울미래유산 지정 해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항일단체 등은 김성수를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성수는 언론·교육 분야 공로로 사후인 1962년 건국공로훈장(대통령상)을 받았다. 하지만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김성수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평가했다. 2017년 4월 대법원에선 학도병 징병 선전행위, 일제 침략전쟁 협력행위 등 김성수의 일부 행적에 대한 친일행위를 인정했다. 이듬해 김성수의 서훈(나라를 위해 뚜렷한 공적을 세운 자에게 훈장과 포장을 수여하는 것)은 박탈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수 가옥에는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내용은 없다. 가옥 안내문에는 ‘민족 교육과 민족 자본 육성 및 언론을 통한 민족 계몽 운동에 주력’ ‘중앙고보, 보성전문, 동아일보 설립을 구상하는 등 일제의 강점 기간에 독립운동의 배후 지원 및 민족 교육, 민족 문화의 보급을 위하여 노력하였던 뜻 깊은 장소’라고 적혀 있다. 가옥 인근의 대동세무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 아무개 군(17)은 “지나가다 봤을 때 위인이 살았던 곳인 줄 알았다”며 “저기(서울미래유산 소개 안내문)에도 업적이 쓰여서”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2018년 3월 김성수 가옥과 동상에 대한 현충시설 지정을 해제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수년간 항일단체와 공방을 벌여 왔음에도 해당 가옥의 서울미래유산 지정을 해제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미래유산팀 관계자는 “(김성수의) 친일행적에는 공감했지만 어두운 면을 비추는 유적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투어의 일환으로 나아가도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지정 해제 불가 사유를 설명했다.
서울 서촌 누하동에 위치한 이상범 가옥은 문화재청 국가등록문화재 제171호다. 이상범은 한국 산수화의 대가지만 역사적 인물로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이상범을 일제에 협력한 인물로 규정했다. 그가 미술을 통해 일제의 국방헌금 모금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상범 가옥과 화실에 있는 안내문에서도 그의 친일 행보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일각에선 친일 인사의 가옥이더라도 역사적 가치가 있으면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문제는 서울미래유산, 등록문화재의 환경관리비가 국민 세금으로 보존되는 시설임에도 친일 행적 없이 업적만 알려져 잘못된 역사를 알리고 있다는 점이다.
김성수 가옥 세금 지원과 관련해 서울시 미래유산팀 관계자는 “(세금 지원은) 미래유산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인다”며 말을 아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상범 가옥의 경우 2005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후 2019년까지 내부 보수, 복도 복원 등으로 총 9800만 원 정도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관계자는 “지자체, 담당 부처 등에서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세금 지원 부분을) 국민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걸 이용해 역사도 제대로 알리지 않고 관광 목적에만 신경 쓴다”고 지적했다.
#강제노역 조선인 묘역 ‘쓰레기장’ 만든 고양시
아이러니하게도 친일 잔재는 잘 보존돼 있는 것과 달리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조선인들이 묻힌 합동 묘지는 관리가 엉망이다. 3·1절 다음날인 지난 2일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화전동 무연고 합장 묘역’에 방문했을 당시에도 훼손 정도는 심각했다.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이름 대신 번호가 적힌 묘지 비석에는 상조회사 명함들이 끼워져 있었다. 일부 비석에는 상조회사 스티커가 붙어 있기도 했다. 묘지 위로 나무가 자라기도 했으며 자란 나무를 베어 묘지 위에 그대로 올려둔 흔적도 남아 있었다. 2019년 3·1절 100주년을 맞아 당시 이재준 고양시장이 심은 ‘기림의 나무’ 앞에는 베어 버린 나뭇가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베었다가 그대로 버린 나뭇가지들에 파묻혀 묘지 비석이 가려진 경우도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던 전용권 씨(29)는 “살아 생전 일제에 강제동원돼 가혹하게 노역을 한 것도 모자라 사망해서까지 후손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라며 “고양시장이 심은 나무, 안내문 등은 있는데 (고양시장은) 한 번 오고 끝나면 뭐하냐”라고 분개했다.
이 묘역엔 ‘경성조차장 제3공구 내 무연고 합장지묘’라고 적힌 묘비석이 있다. 고양시에 따르면 해당 묘비석은 전범기업인 ‘하자마구미’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자마구미는 건설·토목회사다.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하자마구미는 한반도 내에서 철도·수력 발전소 등 토목사업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을 실시했다. 이를 토대로 해당 묘역에는 하자마구미가 토목공사에 참여했을 당시 숨진 강제노역 조선인들의 시신이 안치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현재 묘역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663-9는 고양시 소유 토지다. 고양시 관계자는 “묘역이 생기고 시간이 흐른 뒤 고양시 소유가 됐다”며 “현재 (묘역 담당) 관리소가 따로 존재하진 않는다. 1년에 네 번 청소용역업체를 통해 벌초와 관리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바른 역사 제대로 알려야”
전문가들과 항일단체들은 “대한민국이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역사가 깃든 장소들이 대변하고 있다”며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어떻게 전할지 지자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BSi 사회탐구 역사 부문 류성완 강사는 “친일 인사 유적의 경우 보존 가치가 있기에 미래유산, 등록문화재로 선정됐겠지만 그럼에도 역사를 배우는 국민들이 친일 인사라는 사실을 모르고 넘어가게 만든 건 '직무유기'와 다름없다”며 “친일 인사의 유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겨 유지·보수비를 받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친일 인사라는 점을) 알리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역사를 배우는 국민들에게 명확한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성완 강사는 또 방치된 강제노역 조선인 묘역, 독립운동 유적에 대해선 “우리나라 독립운동은 1920~1940년대 주로 만주·연해주·상하이 일대에서 벌어졌는데 이후 후손들은 경제적·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지자체에서 방치된 곳을 관리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역사적 문제를 정치적인 이유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관계자는 “현충원에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묘지를 이전하고 강제노역 조선인·광복군 무연고 묘역 등의 관리를 체계적으로 해나가자는 법안 개정을 요청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며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 등을 통해 내용을 들어보니 야당(국민의힘) 측에서 ‘나중에 처리합시다’라며 시간을 끌고 있다고 하는데, 역사 관련 문제는 정치적 사안으로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출처 : 일요신문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