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1920년 9월 14일 오후 2시 30분.
젊은 청년 박재혁은 부산경찰서에서 독립운동을 탄압하던 하시모토 서장에게 일제의
조선 침탈을 꾸짖고 폭탄을 터뜨렸다.
박재혁은 대구감옥 복역 중 사형이 집행되기 전 단식으로 1921년 5월 11일 27세 청년으로
순국했다.
적의 소굴인 경찰서에 적장을 마주하여 일으킨 이 사건 이후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나석주의 동척회사 폭탄 투척 사건 등이 이어졌다.
3·1 독립운동 후 침체한 독립운동에 다시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됐다.
독립운동 역사를 뒤흔든 이 사건이 정확하게 100년이 흘렀다.
지역 독립운동가이자 3대 독자라 후손이 없었던 박 의사는 공적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고, 100년이란 시간 동안 점점 사람들 기억 속에 잊혀갔다.
올해 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가 출범하며 박재혁 의사 재조명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
했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난관에 부닥쳤다.
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는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박재혁 의사 동상 앞에서
열릴 예정이던 박재혁 의사 100주년 기념식을 잠정 연기했다고 14일 밝혔다.
기념사업회가 준비한 '박재혁을 노래하다' 학생·시민초청 음악회와 '의열청년 독립운동가
박재혁' 특별기획 패널 전시도 모두 코로나19로 연기됐다.
'청년 박재혁을 말하다' 청년·학생디자인 체험전은 온라인 전시로 대체됐다.
기념사업회 첫 번째 목표인 동상 이전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산보훈청 제공]
현재 박재혁 의사 동상은 인적이 드문 어린이대공원 깊숙한 곳에 있다.
기념사업회는 시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공원, 송상현 광장, 자성대 교차로 등으로
동상 이전을 준비 중이다.
의거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날까지 동상 이전을 목표로 했지만, 부산시와 협의가 아직
진행되지 못해 순국 100주년인 내년 5월 11일까지 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경재 박재혁 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박재혁 의사는 근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할 분 중에 한명이지만 그간 조명받지 못했다"며 "의거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돼야 하지만
코로나19로 사업이 어려움에 부닥쳐 너무 안타깝다. 앞으로 생가 복원 사업과 동상
이전 사업 모두 많은 시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