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단재 신채호 특강 나선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유튜브 ‘미디어 Z’통해 공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단재 신채호 특강이 유튜브 라이브로 10월 5일
오후 3시에 열렸다. 김 전 관장은 <단재 신채호 평전>외 다수의 저서를 집필
했다. 이날 강연회는 단재 신채호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단재의 일생을
되돌아봤다.
그는 “단재는 구국언론인이자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전기작가, 아나키스트였다.
이 모든 분야에서 특출한 일가를 이뤘다. 어린시절을 제외하고 한 20여년 안팎의
성과는 보통 사람이 500년을 해도 못 이룰 것들이다. 조선의 3대 천재였던 단재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청고한 기품과 기상을 잃지 않은 조선시대 참 선비였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김 전 관장은 “단재 선생의 영전을 바치면서 1927년 무솔리니에 의해
처형대에 선 이탈리아 출신 아나키스트 바르톨 로미오 바젠트의 유언을 바치고
싶다. ‘당신들이 두 번 처형한다 해도 내가 올바로 살았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
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1880년 11월 7일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뒤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로 이사해 어린시절을 보냈다. 13세에 ‘사서심경’을 읽은 신동이었던 그는
26세인 1905년 성균관 박사에 임명된다. 출세길이 보장되는 감투였지만 이를
내던지고 재야의 길을 걷는다. 그는 신문으로 백성들을 일깨우고 독립운동의
정보를 전달하고자 했다.
황성신문 논설기자에서 대한매일신보 주필이 된 그는 일본의 침략주의에 대해
매섭게 성토했다. 만주와 상하이에서 무장투쟁을 하던 중에 국내에선 3?1혁명이
벌어진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단재는 이승만이 임정의 최고수반인 국무총리로 선임된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한다. 이 일로 임정과 연을 끊고 얼마 후 ‘이승만 성토문’을 짓기도 했다.
1919년 단재는 신대한을 창간해 거의 혼자 힘으로 신문을 간행했다.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긴 단재는 1921년 ‘하늘 북’을 뜻하는 천고(天鼓)를 발간한다. 천고는
7권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1,2권은 국내에 있고 3권은 베이징 대학
도서관에 있다. 나머지는 행방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