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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매일신문] 친일과 반일의 어스름을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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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8-31 18:12 조회9,0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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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은 한일병합조약 공포 110주년의 날이다. 조약 제1조는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완전하게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양여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약은 1904년 한일협약 이후 일본 침략을 '정당화'한 각종 조약의 완결판이다. 전쟁에 패한 것도 아니고 이들 조약을 통해 나라를 갖다 바치고 식민지가 된 것이다. 그 '공로'로 그들은 일본으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갖다 바친 나라가 일본의 일부로 잘 통치되도록 협조한 자들도 생겨난다. 이들을 통틀어 친일반민족행위자라 한다(줄여서 친일파). 이들의 취급 문제는 해방 직후부터 민족적 과제였다. 해결되지 못한 이 문제는 7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국립묘지에 묻힌 그들의 묘를 옮겨야 한다거나, (애)국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국민' 통합을 해친다며 반발도 적지 않다. 그들도 신생 대한민국의 건설과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국립묘지에 안장된 백선엽 장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제 때 만주의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하고,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해방 후 6·25때는 다부동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국군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래서 그는 친일과 애국 논란의 중심에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김원봉은 일제하에서 가장 치열하게 무력투쟁을 전개한 의열단을 이끌었다. 해방 후 일제 형사 출신의 경찰들에게 수모를 겪고 북으로 가서 북한 정권 수립에 일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는 애국과 용공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왜 백선엽은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김원봉은 독립유공자에서 배제되었는가. 백선엽이 해방 후 친일로 처벌받았으면, 그후 그의 이력은 없을 것이다. 해방 직후 독립유공자 대우를 받았다면 김원봉은 북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해방 직후 한반도의 정치적 이념 공간이 그들에 대한 평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에는 미군과 소련(현 러시아)군의 진주로 남북 분단이 현실화했다. 남에서는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라며 일제 때의 '기술자'들을 필요로 했다. 엄습한 냉전체제가 친일세력들의 활동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후 그들은 반공 한국의 기득권층으로 흡수되어 보수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독립 운동가들은 상대적으로 국가건설 과정에서 소외되고 평가절하 되었다. 냉전체제가 친일청산, 즉 탈식민주의를 가로 막은 결과였다.


친일파 청산 담론은 프랑스의 예를 자주 든다. 프랑스는 독일 점령 하에서 나치 정권에 조금이라도 부역을 한 자들을 가차 없이 처벌했다. 100만 명가량이 체포되고, 이 중 6천763명은 사형, 2만6천529명은 징역형에 처해졌다. 정치인, 언론인, 기업가, 종교인 등 사회 지배층에게는 중형을 선고했다. 9만5천명에게는 시민권을 박탈하는 '비국민' 선고를 내렸다. 나치협력자 색출은 40년 간 계속된다. 독일의 침략을 받은 다른 유럽 국가들은 더 가혹했다. 민족반역 행위로 구속된 사람이 프랑스는 10만 명당 94명, 벨기에 596명, 네덜란드 419명, 노르웨이 633명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부일(附日) 협력자 청산에 대부분 실패한다. 유럽 국가들의 철저한 탈나치화는 새로운 독일을 필요로 했고, 독일은 반성했다. 피식민지였던 동아시아에서의 친일세력의 건재는 일본제국 부활의 동력을 제공하고, 일본은 반성할 필요가 없었다.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왜 다른가. 독일침략 이전에 근대국민국가의 경험을 가진 유럽 국가들에게 나치에 협력한 '비국민'은 새로운 국가 건설에 장애 요소였다. 일본 침략 이전 전근대국가에 머물렀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해방 후 근대국민국가 건설에 직면한다. 일제하에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근대'를 경험한 그들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동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은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국민국가 형성을 향해가고 있다. 백년대계를 위해 이제라도 '비국민'적 요소를 걷어낼 필요성을 지각하고, 그럴만한 힘이 생겼는지 모른다. 친일과 반일이 뒤섞인 어스름한 혼돈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옥석을 가리면서 때로는 단호한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