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구익균 애국지사 드디어 현충원으로 모신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을 지낸 구익균 애국지사(1908년 2월 18일~2013년 4월 8일)가 천신만고 끝에 2013년 12월 20일 오전 10시 도산공원내 강당에서 추모식을 한 뒤 같은 날 오후3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고인은 지난 4월8일 국립묘지 안장거부를 당하여 국민들과 흥사단의 안타까움을 샀다. 이날 추모식에는 구익균애국지사의 현충원 안장운동에 앞장섰던 흥사단 반재철이사장, 광복회장, 민주당 박지원의원, 이종걸의원 등의 추모사가 예정되어있다.
한편 유가족인 구혜란씨가 5월14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행정심판을 청구하여, 11월26일 고인이 국립묘지 안장 대상임을 확정했다. 중앙행정심판위 관계자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 여부를 결정할 때는 고인의 국가나 사회에 대한 공헌도를 비롯하여 인품, 그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 그가 끼친 영향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고 밝힌바 있다.
구익균 애국지사는 1928년 신의주고보 재학당시 잡지 『신우』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구속되었고, 1929년 신의주고보 비밀결사 조직, 신의주학생의거 주동 후 상해에 망명하여, 흥사단 청년지도자로 활동했다. 1933년 한국독립당요원으로, 광동‧ 광서성 한국유학생 지도책으로 활동하다가 1935년 상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의 형을 선고 받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여러 차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계속하며 일제에 항거하다가 해방 이후에는 김구, 김규식과 함께 통일독립촉진회를 결성했으며, 대일굴욕외교 반대 범국민투쟁에 참여, 통일사회당 재정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Korea영세중립화통일 추진본부 및 도산안창호혁명사상연구원 창립하는 등 한반도의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을 해왔다.
(정광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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