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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기호일보] 식민의 그늘 거둬야 자주 독립 희망의 싹 움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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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24 10:27 조회3,9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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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역사 마주한 순간...어둠 헤치고 광명 비추니


120년 전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강점과 식민지배 과정에서 남겨 놓은 모든 형태의 부정적 유산을 식민잔재라 일컫는다.

일본 침략자들의 편에 기생하며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반민족·반인륜적 행위를 일삼은 친일파의 논리가 반영된 유·무형의 자산 역시 친일유산이라 부른다. 위례역사문화연구소와 기호일보가 10차례에 걸쳐 기획한 본 연재물은 경기도 전역에 식민잔재와 친일유산이 굳건히 자리함을 재확인하고 청산과 독립 선양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 사례 1=경기도의 행정중심지 수원시, 그 중 한국 농어촌 업무의 중심기관인 수원농어촌공사(장안구 파장동) 맞은편 공터에는 ‘치산치수비(治山治水碑)’라 쓰여진 높이 2.4m의 거대한 비석을 만날 수 있다. 1939년 6월 광교산 일대 임야에 사방공사와 식수조림을 행하고 제방을 축조한 일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당시 일왕면장이 세운 비석에 경기도지사인 칸자 요시쿠니가 직접 글씨를 써 새겨 넣었다. 그 옆에 작게 세워진 안내판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공사로 얼마나 많은 토지 수탈과 삼림 파괴가 이뤄졌는지, 비석에 함께 새겨진 한인 지주들이 얼마나 많은 친일행위를 했는지를 시민들에게 실감케 하지는 못했다. 
일본 제국이 한국 식민지를 잘 통치했다고 자랑 삼아 만든 기념물과 유적은 경기도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원시 서호 옆에 자리한 옛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역사관 입구에 굳건히 자리잡은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표석은 이곳이 정조대왕이 아닌 일본 제국이 새로운 개량종을 식민지에 보급하기 위해 1906년부터 노력해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수원과 인접한 용인의 친일 지주들도 수리조합을 만들어 적극 협력한 뒤 기념비를 만들었으니 현재 수원박물관으로 이전해 야외 전시 중인 1927년 작 수룡수리조합기념비도 그 증거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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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2=안성시 중앙로에 위치한 국립한경대학교의 정문을 지나면 곧장 8m 높이의 거대한 동상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주인공은 박필병이다. 안성 출신의 대부호로 1939년 안성농업학교를 세워 오늘의 한경대를 있게 했다. 그는 1927년 경기도 평의회원에 이어 1941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하지만 동상을 소개하는 안내판 어디에도 친일 행적을 반성하고 비판한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친일 유지들의 반민족행위가 교묘히 가려진 채 지역에 기여한 공적만 거창하게 소개된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관곡근린공원 길가에 1930년 세워진 ‘용수흥농회사장 오성선기념비’ 옆에는 용인시에서 관리하고 작성한 안내판이 있는데, 오성선이 ‘농촌 계몽과 빈농 구제를 적극 펼쳤다’며 ‘주민들이 공적을 기려’ 기념비를 세웠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가 경기도 평의회원에 이어 1939년 친일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의 이사를 역임했다는 행적은 지적하지 않았다.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 안에 자리한 산성동의 남문 비석거리 안에는 이곳을 지킨 역대 광주유수와 수어사들의 공적비 30기가 있는데, 이 가운데 1911년 광주군수를 지낸 강원달과 군참사를 지낸 이용식의 영세불망비가 있다. 강원달은 1926년 경기도 평의회원으로 재직하면서 한국병합기념장과 천황즉위 기념장, 국세조사 기념장 등을 받으며 부일 협력에 남다른 공적을 세운 적극적 친일 인사다. 하지만 여러 비석과 엉켜 마구잡이로 세워져 그의 추악한 행적을 알아차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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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3=이천시 신둔면의 면사무소 앞 정원에는 5개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1918년 한봉교에 이어 면장을 지낸 이일창 등에 대한 공적비인데, 대부분 일제강점기 지역주민의 수탈에 앞장서 온 친일 유지들이다. 한데 맞은편 정원에는 1919년 신둔면 주민들의 3·1 만세시위가 일어났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으니 친일과 항일의 상반된 유적이 혼재해 있는 실정이다.

안성시의 낙원동 낙원역사공원과 공도읍 만정리유적공원은 대규모 택지개발 과정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삼국시대 묘역, 조선시대 집터 등이 잘 전시된 곳으로 역대 안성군수들의 공덕비도 다수 전시돼 있어 온라인에서도 ‘애민사상을 실천한 사람들 이야기로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소개돼 있다. 하지만 이 비석군 사이에 친일 유지로 경기도 평의회원을 지낸 박필병의 시혜비와 그의 친척이자 읍내면 면장을 지낸 박승륙의 불망비가 있다. 박승륙 역시 안성의 부호이며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관료로 의열투쟁가 이수흥을 고발한 인물이기도 하다.

# 사례 4=친일문화는 주로 친일파들이 생산하거나 그들의 영향을 받은 문화예술 창작물을 말한다. 일제가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구축한 정책의 산물, 특히 민족 말살을 목적으로 시행한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 침략전쟁 찬양과 전쟁부역을 위한 문화적 예술행위가 포함된다. 더욱이 오랜 식민지배 하에서 오염된 생활언어와 훼손된 전통문화, 군국주의와 국가주의 문화도 심각한 실정이다.

이천시 설봉공원 내 충효공원 맞은편에 월전 장우성 화백을 기념한 이천시립 월전미술관이 자리해 있다. 미술관 안에 작가의 많은 작품 전시와 함께 월전기념관 앞 광장에 작품연보가 실려 있지만, 1941년 조선총독부 주관의 전람회 등에서 수상한 친일행위에 대한 흔적은 전혀 없다. 2005년 사망 직전까지 친일행위에 대한 사죄 없이 화단의 영화를 누려 온 화가가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 그린 이순신 장군 영정은 4천700억 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바꿔야 할 처지에 놓였다.

친일 음악가들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도 경기도 미래교육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흥렬·현제명·김성태·김동진 등 일제 찬양과 전쟁 선동에 앞장선 음악가들이 도내 초·중·고 89개 교의 교가를 작사·작곡했다. 만주 침략을 찬양한 이흥렬이 작곡한 ‘경기도가’는 올해 도민의 노래 공모전으로 새로 태어날 예정이며, 많은 학교들이 학생과 동문·학부모회와 함께 교가를 재제정할 계획이라 한다. 하지만 아직 도내 많은 학교의 교표들이 일본 침략군의 깃발인 욱일기나 전투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갖고 있으며, 군대 연병장을 본뜬 사열대나 훈화·훈시·결석계 등 군사문화의 잔재들이 바뀌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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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5=생활문화 속에 굳건히 살아있는 식민용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매우 무섭고 치명적이다. 가장 흔히 쓰면서 바꾸지 못하는 일본어로는 단체사진을 찍거나 힘내라는 응원을 보낼 때 쓰는 파이팅(Fighting)이다. 권투 경기에서 잘 싸우자는 뜻의 영어를 일본어로 바꾼 것이지만, 침략전쟁기 일본군들의 출전 구호로서 우리 독립군을 죽이러 가면서 외친 것이니 모욕적인 말이다. 정조대왕이 서로 화합하며 살라는 뜻에서 지은 ‘지화(至和)자’로 바꿔 쓰길 권장한다.

자주 쓰는 생활용어 중 ‘망년회’는 송년회로, ‘유도리’는 융통성으로, ‘가라’는 가짜로, ‘노견’은 갓길로, ‘간지나다’는 멋지다는 순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다. 음식과 놀이문화에도 많은 편인데 ‘사라’는 접시로, ‘스시’는 초밥으로, ‘소바’는 메밀국수로, ‘다데기’는 양념으로, ‘닭도리탕’은 닭볶음탕으로 바꿔야 하며, ‘짱께미뽀’ 놀이는 ‘가위바위보’로, ‘다마치기’는 구슬치기로 바꿔 써야 할 것이다.

# 사례 6="경기도 이천시의 시민단체가 관내 설봉공원에 있는 이인직·서정주 등 친일 행적 문인 2명의 문학비 철거에 나섰다." 지난 11월 이천시에서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다. 신소설 「혈의 누」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이인직은 매국노 이완용의 비서로서 강제합병에 앞장선 반민족행위자이며, 서정주는 일본 침략군을 찬양한 친일 시인이니 기념비를 철거한 뒤 그 자리에 표지석을 세워 두 작가의 친일 행적을 기록해 뒀다.

지난해 6월 독립운동 기념사업 지원조례를 제정한 경기도의회는 이달 전국 최초로 청소년 항일독립유적지 탐방활동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경기도는 경북에 이어 두 번째로 88개의 현충시설을 갖췄으며, 215개의 독립운동사적지가 있는 ‘독립운동의 성지’다. 한말 의병부터 3·1독립만세운동, 의열투쟁과 민족운동 등 다양한 항일운동 현장이 역사교육장으로 보존돼 있고, 조소앙·신익희·여운형을 비롯한 숱한 독립지사들의 치열한 삶과 꿈이 새겨진 곳이다. 따라서 경기지역 식민잔재 실태조사와 청산운동은 물론 독립운동 현장 복원과 선양사업에 매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향후 기념관과 기념공원 조성을 비롯해 영상과 웹툰, 온라인 추모관 등 다양한 선양사업, 문화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10차례에 걸친 지난 3개월의 긴 여정은 ‘사례 1~5’의 어두운 잔재를 거두고 ‘사례 6’과 같은 사필귀정(史必歸正)의 밝은 미래를 여는 진군의 길이기에 기쁨과 보람을 갖고자 한다.


글·사진=김명섭(단국대 연구교수)

출처 : 기호일보(http://www.kiho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