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혼(魂)인들 어찌 감히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글을 모두 불태워 강물에 흘려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
충북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보재 이상설 선생(1870∼1917)이 1917년 3월 2일 러시아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언이다. 24세 때 갑오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장에 임명된 수재인 그는 일생을 조국의 독립에 헌신하다 머나먼 타국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진천군이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을 맞는 올해 다양한 추모사업을 벌인다.
6일 진천군에 따르면 4월 21, 22일 이틀간 5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기념식이 열린다. 또 전국학술대회와 전국 한시(漢詩) 백일장, 시 낭송 대회, 학생미술대회, 이상설 평전 출판기념회, 이상설 역사자료 전시회 등이 진행된다. 이외에도 100주년 기념 수학캠프, 청소년 해외역사문화탐방, 다큐멘터리 제작, 해외 자매결연 추진, 기념비 건립, 국민대토론회 개최 등도 열어 선생의 업적을 기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진천군은 지난해 9월 선양사업팀, 추모사업팀, 지원사업팀, 유물수집·기념관건립팀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선생의 생가(生家)가 있는 진천읍 산척리 일대 2만5000여 m²에 조성하는 ‘보재 이상설 기념관 건립사업’도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현재 기본·실시설계가 막바지 단계여서 이르면 올 상반기 안에 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기념관 건립비(총 87억7000만 원)에 대한 국비(26억3000만 원)와 지방비(43억9000만 원) 지원도 확정됐다. 이상설 기념사업회가 부담하는 17억5000만 원은 범국민 모금운동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일 이상설 기념사업회를 지정기부금 단체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기념사업회에 성금을 내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상설 선생은 을사늑약 이후 1906년 중국 지린(吉林) 성 룽징(龍井)으로 망명해 서전서숙을 세우고 항일 민족교육운동을 펼쳤다. 1907년 4월 황제의 밀명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위종 선생과 함께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려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무산됐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한 이준 선생을 헤이그에 묻은 선생은 유럽을 돌며 외교활동을 벌이다가 미국에서 한인단체의 통합을 도왔다.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로 귀환해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착수해 연해주와 북간도 일대 의병을 모아 십삼도의군(十三道義軍)을 편성했다. 광복군을 양성하다 러시아가 광복군정부를 해체하자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박은식 등과 신한혁명당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벌였다. 선생은 1916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병을 얻은 뒤 이듬해 니콜스크에서 숨을 거뒀다. 문의는 사단법인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사무국 02-747-2285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