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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선생 탄신 136주년 기념 헌화식이 지난해 12월 8일 대전 중구 어남동 신채호 생가에서 열린 가운데 육군 32사단 신채호부대 장병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2016.12.8/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
일제 침탈 아래서 언론인과 사학자로서 민족의식 고취에 힘쓴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을 기리르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올해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순국 81주기를 맞아 오는 21일 청주시 낭성면에 있는 선생의 사당 및 묘정에서 추모기념행사가 열린다.
단재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추모식에는 김이주 충북남부 보훈지청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와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등 200여명이 참석한다.
1898년 성균관에 입학한 신채호 선생은 개화사상을 접하고 '독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한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후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한다.
1907년 안창호, 이갑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신민회의 창립에 참가하여 신민회의 이념을 논설에 반영하는 등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그 해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으며 기호흥학회월보, 대한협회회보 등 언론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에도 주력했다.
한편 올해로 110주년을 맞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식이 오는 21일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다.
국채보상운동은 1904년 일제의 고문정치가 시작되면서 도입한 차관으로 경제가 파탄에 이르자,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선생 등이 중심이 되어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대한매일신보에 '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2000만 동포가 금연을 통해 모은 돈으로 국채를 보상하자'는 취지문이 발표되자, 전국의 남녀노소 및 일본, 미국, 러시아의 동포들까지 참여한 모금운동으로 확대돼 한말 최대의 민족운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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