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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 광복 74주년, 의열단 창단 100주년 ???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선생을 재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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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88회 작성일 19-08-1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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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박사<사진=tbs> 






◎ 3부 

[인터뷰 제3공장]

광복 74주년, 의열단 창단 100주년 ???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선생을 재조명하다


- 김태영 박사 (약산 김원봉 선생 외조카)


김어준 : 내일이면 광복 74주년이죠. 그리고 올해가 대표적인 항일무장 독립운동단체 의열단, 들어보셨죠? 창단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해서 특별한 손님을 모셨는데요. 의열단 단장, 김원봉 선생, 얼마 전에도 보수 야당이 문제 삼았던 인사죠. 김원봉 선생의 외조카, 미국에 계신데 귀국하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재빨리 모셨습니다. 김태영 박사님 스튜디오에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태영 : 안녕하십니까? 

김어준 : L.A에 사신다고요? 

김태영 : 네, 네. 

김어준 : 이 방송 시작 전에 제가 L.A 어디에 사는지 자세히 들었습니다. L.A 천문대에 사신다고 그래서 ‘어? 천문대에서 근무하시는, 박사님이시니까 천문학을 하셨나?’ 그런데 쭉 설명을 듣다 보니까 천문대 근처에 그냥 집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질문 드릴 게 굉장히 많은데, 우선 김원봉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는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이 많았다고 하니까 가족들이 고초를 많이 겪었겠죠?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나중에 월북하셔서 또 고초를 많이 겪었을 거 않으셨습니까? 그 얘기부터 시작해 볼게요. 가족들이 아예 뿔뿔이 흩어졌다고 하던데, 일제 강점기부터 해서 아예. 

김태영 : 해방 후에, 

김어준 : 일제 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김태영 : 노덕술이나 뭐, 대표적으로 노덕술한테, 

김어준 : 아, 친일경찰 노덕술? 

김태영 : 그 양반이 우리나라 고문의 원조죠. 경찰고문의 원조인데, 그 양반한테 수모를 당하고, 1948년도에 월북을 하셨는데, 북한으로 도망을 가셨는데, 

김어준 : 도망을 가셨다? 

김태영 : 그러자 남아있는 가족들이 제대로 살았겠습니까? 그러니까,

김어준 : 못 살았겠죠. 

김태영 : 친동생 4명이 처형을 당하고, 

김어준 : 아, 그랬어요? 

김태영 : 네, 처형을 당하고, 나머지는 이제 5촌들이나 친구들도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었죠. 그러다 보니까 그 당시에 붙잡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다 도망을 가야 될 거 아닙니까? 그래야 사니까. 

김어준 : 아니, 동생이 바로 처형을 당했으니까. 

김태영 : 그러니까 다 도망을 가야 되니까 이제 남은 동생들이 많았을 거 아닙니까? 원래는 10형제였으니까.

김어준 : 아, 10형제? 그중 4명의 남동생은 잡혀서 바로 처형당했고? 

김태영 : 네, 그러니까 이제 몇 분은 살아계셨는데, 그분들은 부두에 노무자도 하고, 위장을 해서, 

김어준 : 신분을 감추고 뿔뿔이 흩어졌다? 

김태영 : 피했으니까 자연히 밑에 제 사촌분들은 다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죠. 어머니는 여자이고 그러다 보니까 어머니는 살려줬어요. 

김어준 : 어머니는 이제 김원봉 선생의 여동생? 

김태영 : 막내여동생입니다. 

김어준 : 막내여동생. 그래서 살았고, 그래서 미국으로 도망가신 겁니까, 말하자면? 

김태영 : 저는 후에, 그 후에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난 다음에, 

김어준 : 다음에? 

김태영 : 이제 연좌제가 풀렸을 거 아닙니까? 

김어준 : 아, 5.16 쿠데타 이후에 또 한 번 가족들이 고초를 겪으셨어요? 

김태영 : 그거는 뭐냐 그러면, 4.19 때, 그때 살아남은 외삼촌 중에 한 분이 우리 유골을 수습을 해야 되겠다. 

김어준 : 아, 이제 좋은 세상이 돌아올 것 같으니. 

김태영 : 그러니까 장면 정부 때 아닙니까? 

김어준 : 잠시. 

김태영 :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정부였으니까. 그래서 유골을 수습을 했어요. 그 당시 밀양에서 한 500 몇 십 명을 처형을, 골짜기에 데려가서 총살을 시켰는데, 그 유골을 그냥 덮었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장면 정부가 들어서서 그 유골의 수습을 했어요. 이제 봉철이 외삼촌이, 그러니까 버릇이 돼서 자꾸 봉철이 외삼촌, 봉철이 외삼촌 그러는데, 그분이 유골을 다 수습을 해서 밀양공설운동장에서 제를 지냈어요. 그리고 선산에다가, 그 당시에는 누구 유골이 누구 거인지를 잘 모르니까. 

김어준 : 구분이 안 되니까, DNA가 없어서. 

김태영 : 그렇죠. 그러니까 이제, 미안합니다. 큰 봉분을 만들어서 그 유골을

김어준 : 모셨는데

김태영 : 모셨어요. 모셨는데, 모셔놓고 이제 뭐, 제사도 지내고 했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5.16이 터진 거죠. 그러니까 밤중에 이제 군인이 와서, 군인들이 와서, 

김어준 : 잡아갔어요? 

김태영 : 그 무덤을 또 다 파헤쳤어요. 파헤쳐서 그걸 다 태워 없앤다고 가지고 갔죠. 

김어준 : 그리고 외삼촌은 잡혀가고? 

김태영 : 네. 

김어준 : 그리고 또 다시 한 번 흩어지고 가족은? 

김태영 : 네. 

김어준 : 자, 이걸 여쭤볼게요. 약산 김원봉 선생은 의열단 조직해서 당시 조선총독부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 실제로 현상금이 김구 선생이 60만 원이었는데, 100만 원이었고, 요인암살, 기관파괴, 이 요인암살과 기관파괴는 일제 시각에서, 우리 입장에서는 독립운동을 한 거죠. 그런데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국무부장, 국무부장이면, 

김태영 : 국방부 장관이죠. 

김어준 : 그러니까 국방부 장관, 지금으로 치면. 그리고 그 해방이 된 정국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왔는데, 왜 여기서 몇 년 있다 월북을 하셨냐 이거죠? 이게 이제 사람들이 보수진영에서는 “빨갱이라서 월북했다. 간첩이다.” 이런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어머니한테 들으신 얘기나 그때 오빠가 이렇게 해서 갔다거나, 왜 가신 거예요? 

김태영 : 북한으로 올라갔을 그 당시에 어머니가, 그 당시는 약산 선생이 어머니를 “부산에서 학교를 옮겨서 서울로 유학을 오라.” 그랬을 당시였어요. 

김어준 : 반민특위하고 그럴 때인데. 

김태영 : 그래서 어머니는 좀 들떠서 서울에 가서 공부한다 이래서 막내외삼촌하고, 처형당한 막내외삼촌하고 서울로 다니러왔어요. 그래서 왔는데, 어느 날 어디서 막 전화가 오더래요. 전화도 오고 이랬는데, 그 당시에 노덕술한테 당하고, 

김어준 : 일단 끌려가서? 

김태영 : 당했을 적에 그 당시에 낳은 둘째아들이 있어요, 철근이라고. 갓난아이니까, 갓난아이를 막 씻더래요. 씻어서, 

김어준 : 아, 선생이? 

김태영 : 네, 그리고 이제 기저귀하고 이렇게 챙겼을 거 아닙니까? 

김어준 : 그러니까 그 본인은 독립운동을 한 사람인데, 해방된 후 조국에 왔더니 친일 앞잡이였던 노덕술한테 가서 온갖 수모를 당한 끝에 다시 집에 돌아온 다음에 아이를 씻더라? 그리고서요? 

김태영 : 그 후에 이제 좀 며칠 지났겠죠. 그리고 아이를 씻어서, 가면서 “너네들은 내 동생이라 그러지 마라, 경찰이나 누가 오면.” 그리고 뒷문으로 해서 차를 운전사가 운전을 하고 그때 헤어지고는 못 본 거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에, 그러고 난 뒤에 좀 이따가 경찰, 총소리가 나고 경찰도 들이닥치고, 

김어준 : 아, 경찰이 잡으러 왔다? 

김태영 : 네, 들이닥치고 하니까 없거든요. 없으니까 어머니하고 이제, 

김어준 : 아, 총소리도 들으셨대요? 

김태영 : 네, 네. 막내외삼촌하고 경찰서, 종로경찰서에 붙들려서 갔죠. 가서, 

김어준 : 노덕술이 있던 종로경찰서로? 

김태영 : 그랬겠죠. 누구라고는 어머니를 잘 모르죠. 그래서 어머니는 나중에도 물고문도 당하고, 

김어준 : 어머님도요? 

김태영 : 물고문 당했다는 거는 내가 미국 가서 40대 중반에 들었어요. 

김어준 : 그때, 

김태영 : 그런데 그런 말씀은 여자들은 잘 안 하거든요. 

김어준 : 고등학생이셨던 나이죠, 어머님이? 고등학생인데, 그때 이제 선생님, 김원봉 선생을 잡으러 왔는데, 없으니까 고등학생 여동생을 데리고 가서 물고문을 시켰다? 

김태영 : 네. 그러니까 뭐, “어디로 갔느냐?” 이렇게 묻고 뭐, 그랬겠죠. 

김어준 : 그렇게 해서 결국 사실은 여운형 선생이나 또 김구 선생이나 이렇게 독립운동을 했거나 이런 분들이 많이 죽었잖아요, 실제. 

김태영 : 이제 그 당시가 북한으로 올라가셨을 그 당시가 여운형 선생이 돌아가시고, 

김어준 : 암살당하고. 

김태영 : 그 당시 장례를 치러드렸거든요, 우리 약산 선생님이. 그랬으니까 그 당시에 충격에서 못 벗어난 상황에서…. 

김어준 : 본인도 이제 여기 있다가는 소위 이런 친일경찰들한테 죽임을 당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고, 

김태영 : 네, 그런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김어준 : 아, 그래요? 

김태영 : 그 당시에 대만에 있던 예전에 비서했던 중국분이, 중국분한테 편지를 자주 왔다 갔다 했던가 봐요. 

김어준 : 그 내용이? 

김태영 : 내용이 뭐냐 그러면 ‘나는 북으로 올라가기 싫은데 너무 여기에 있으면 결국은 왜놈들한테 내가 죽겠구나.’

김어준 : 왜놈들이요? 

김태영 : 그러니까 ‘친일파’라 그런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는. 

김어준 : 그때는 왜놈라고…. 

김태영 : 왜놈이라고 했는데, 그 편지가 남아 있어요. 

김어준 : 아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왜놈이죠. 

김태영 : 왜놈이죠. 

김어준 : 내가 조국에 돌아왔는데, 여전히 그 앞잡이 하던 사람들이 나를 때리니까, 죽이려고 하니까 그런데 결국 북에 올라가서도 김일성 비판을 해서 숙청 당하신 거 아닙니까? 

김태영 : 그렇죠. 

김어준 : 유골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김태영 : 그렇죠. 

김어준 : 그러니까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는 죽이려고 해서 도망갔고, 북쪽에서는 정말로 제거를 했어요, 숙청. 

김태영 : 나중에 했죠. 

김어준 : 58년에. 전쟁 끝나고 5년 후에. 

김태영 : 맞아요. 맞습니다. 

김어준 : 기구한 운명이네요. 

김태영 : 그거 참…. 

김어준 : 그러니까 이, 선생은 친일파를 왜놈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친일파들이 자기한테 빨갱이라고 뒤집어씌워서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북한 가기 싫었는데 갔다. 그래서 월북해서 빨갱이란 얘기를 지금도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태영 : 그렇죠. 빨갱이라는 얘기는 공산당에 가입을 해야 빨갱이가 되는 거죠. 

김어준 : 그 시절에? 아니, 그런데 저는 이거부터 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애초부터 그랬다면 남쪽으로 올 게 아니라 북한으로 갔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김태영 : 그렇죠. 

김어준 : 한국전쟁 나기 전인데, 왕래가 자유롭고. 

김태영 : 북한에 뭐, 있었던 부하들도, 옛날 부하들도 많고 이랬으니까 북한으로 먼저 갔겠죠, 만일에 빨갱이였으면. 

김어준 : 선생님이 들으신 그 약산 선생, 약산 선생이 토지 분배 같은 거 주장하셨다고 하셔서. 뭐, 그런 것도…. 

김태영 : 그 당시에 이제 상황을 보면 김구 선생님은, 김구 선생님은 우파이고, 

김어준 : 네, 그랬죠. 

김태영 : 그러니까 보수, 진정한 보수가 김구 선생님이고, 그다음에 야당 격은, 이제 진보 쪽은 김원봉이었거든요. 그래서 둘이서 이제 합자를 해서 광복군도 만들고 그랬는데, 많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이 약산을 빨갱이라고 쓴 게 하나도 없습니다. 

김어준 : 그건 정치적으로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빨갱이라고 역사, 역사학에서는 그렇게 정리한 분이 아마도 없어요, 사실. 100주년인데, “여전히 서훈을 하면 안 된다. 뼛속까지 공산주의다.” 이런 얘기 듣지 않습니까? 심정이 어떠세요, 그런 얘기 들으면? 

김태영 : 그러니까 그분들이 그 양반들을 좀 무지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있으려고 그러면 그 나라 역사를 먼저 알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어느 정도는 역사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죠. 뭐, 팩트가 좀, 좀 알고 있던지 이렇게 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뭐, 자기 마음대로, 

김어준 : 마음대로. 

김태영 : 마음대로 얘기하고, 보면 역사적인 검증 같은 거 없이 역사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볼 때는 무지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김어준 : 최근에 수출 규제 관련해서 여기저기서 일본 아베 수상을 지지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거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김태영 : 약산 선생이 예전에 일본을 뭐라 그랬냐 그러면, 독립운동 할 적에. 강도라고 그랬습니다. 

(후략)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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