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웅> 그러니까 제가 이런 기사도 나와요. 술 한잔 먹고 나쁜 짓을 한 조선인이 하나 있었나 봐요. 그러니까 일제 경찰이 잡아가 수사를 하는데 그 친구가 내가 조선의열단이다.
◇ 정관용> 거짓말로?
◆ 김원웅> 거짓말로. 그랬더니 일본 경찰이 저 밑에 아무도 없더래요. 도망왔대. 그러니까 조선의열단이.
◇ 정관용> 그렇게 무서워했다.
◆ 김원웅> 어디에서 나타나서 어디에서 총을 쏠지 모르고 자기 생명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도망을 가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우리가 일제가 독립운동을 하면 현상금을 걸잖아요. 그런데 백범 김구가 현상금이 많이 걸렸어요. 60만 원이에요, 그 당시에. 그런데 약산 김원봉은 100만 원이야. 그런데 그 100만 원이 요즘 돈으로는 320억 원이에요.
◇ 정관용> 그렇죠, 그렇죠.
◆ 김원웅> 320억 원이 빈라덴, 빈라덴이 500억 원이라고 하더라고. 그 이전에 전 세계에서 제일 높은 현상금이에요. 그런데 일제가 두려워했는데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의 집권 세력들이나 그 세력이 일제가 두려워했던 걸 똑같이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친일반민족세력이 집권하다 보니까. 그래서 조선의열단이 무장투쟁 같은 걸 조금 이렇게 폄하하는 것 같은 느낌.
◇ 정관용> 그보다도 해방 이후 직후 공관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바로 그 친일 잠재들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으셨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북한으로 가시게 된 거잖아요. 그리고 북한에 갔다는 그걸 또 핑계로 빨갱이 됐다는 식으로 해서 친일파 잔재들이 조선의열단을 뭉개버린 것 아닙니까.
◆ 김원웅> 저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는 어떤 불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외세에 의한 분단된 우리 뜻이 반영된 분단된 남한의 단독 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만약에 살아계셨다면 대한민국에서 훈장을 안 받으셨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 지금 말씀하신 김원봉 선생님이 이분이 제 아버지가 조선의열단이에요.
◇ 정관용> 광복군 출신이시잖아요.
◆ 김원웅> 광복군 출신 1지대예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도 16살 처녀인 나이에 조선의열단에 가입을 했어요. 21살 때 저희 아버지를 만났어요. 우리 어머니도 조선의열단이야. 그러니까 김원봉 선생님을 잘 알잖아요. 그런데 김원봉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한 얘기가 공산주의자 아니야. 순수한 민족주의자예요. 그래서 그분이 해방 이후에 남쪽에 살려고 왔잖아요. 백범 김구랑 같이. 그래서 왔는데 일본 친일 경찰이 시켜서 가서 잡아다가 수모를 주고 뺨을 때리고 그리고 그것만 한 게 아니라 친일 경찰들이 테러리스트랑 결합해서 깡패들 암살 시도를 했어요. 그래서 그걸 그러니까 그 직전에 그때 돌아가셨고. 백범 김구도. 만약에 약산 김원봉이 한국에 계속 계셨다면 저는 암살당했을 거다. 그러니까 생명의 위협 때문에 월북을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분이 월북한 게 아니라 쫓아낸 거예요. 남한의 친일세력들이. 그렇게 쫓아내놓고 왜 도망갔냐. 이렇게 하면서 그 사람 훈장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저는 조금 적반하장 같아.
◇ 정관용> 아무튼 북한으로 가시게 된 그 과정에 대해서는 지금 여러 가지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박해 때문에 쫓겨났다. 그런데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부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런 그 부분은 또 따로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 논란거리가 되는 건데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광복군의 중심부대 역할을 할 만큼 핵심이었던 조선의열단이 바로 그 약산 김원봉 선생의 북한 행적이라는 것 때문에 심지어 이육사까지도 우리 국민이 기억 못할 만큼 그렇게 잊혀져서야 되겠느냐. 이것만은 확실한 거 아니겠습니까?
◆ 김원웅> 저희들이 올해가 사실은 100주년이 되잖아요. 그러면 정부도 마땅히 계획을 세워서 임시정부 100주년만이 아니라 조선 100주년도 기념행사를 해야 되거든요.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 아니에요.
◇ 정관용> 그런데 기념사업은 정부가 만든 게 아니에요? 민간이 만든 거예요?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업사업 추진위원회 발족식 (사진=추진위 제공)
◆ 김원웅> 해달라고 했더니 관심이 없더라고요. 할 수 없이 저희들이 민간으로 만들기 시작을 해서 거기에 안중근의사기념사 앞에 단체기념사 앞에 이런 기념사 앞을 다 합쳐서 연대해서 같이 지금 하는 거죠.
◇ 정관용> 정부 예산 지원도 없고?
◆ 김원웅> 아무것도 없죠.
◇ 정관용> 11월 9일 그날을 기점으로 무슨 기념행사들을 준비하고 계세요?
◆ 김원웅> 저희들이 기념행사를 여러 가지 학술적인 행사도 조선의열단을 재조명하기 위해서.
◇ 정관용> 학술행사 중요합니다. 그거 잘 알려야 돼요.
◆ 김원웅> 그래서 국제학술대회를 하려고 하는데 우선 북한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요. 또 중국에도 봉산당 쪽에 조선의열단 활동을 한 사람이 있고 대만에도 조선의열단 전문가들도 있고 또 일본에도 조선의열단이 지금 자료에 의하면 한 2000명 있었다 그래요, 그 당시에. 그 중의 한 명이 박열이에요.
◇ 정관용> 박열.
◆ 김원웅> 그런 분들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비밀 조직이니까. 그런 일본에 또 전문가들이 있어요. 합쳐서 동양의 조선의열단 활동 영역에 있는 분들끼리 모여서 한번 학술토론회를 갖자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있고요. 또 이제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건 국민들이.
◇ 정관용> 알아야죠.
◆ 김원웅> 국민들이 알아야 해서 저희들 욕심 같아서는 11월 9일에서부터 10일, 11일 이렇게 걸쳐서 시청 앞 큰 광장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국민이 참여하는 축제를 한번 하고 싶어요. 그래서 조선의열단은 가장 어떻게 보면 장렬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장렬한 조직이잖아요. 그래서 장렬한 조직에 걸맞은 뮤지컬 같은 것도 상영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저희들이 돈이 좀 필요해서 요즘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국민 모금 같은 것 이렇게 하려고 지금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지금 벌써 7월 중순인데.
◆ 김원웅> 그래서 지금 바쁘죠.
◇ 정관용> 11월달에 뮤지컬 올리시려면. . .
◆ 김원웅> 그래서 지금 일부 간부들이랑 상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지금 상의 시작해서 됩니까? 한참 연습해야 되는데.
◆ 김원웅> 그렇죠. 지금 걱정이 많아요. 예산을 정부랑 계속 상의하다 늦어졌어요.
◇ 정관용> 명진스님도 기념사업회의 한 분이시더라고요.
◆ 김원웅> 그렇죠, 기념사업회.
◇ 정관용> 기념사업위원회 발족식에서 오늘 이 자리는 조선의열단 2기 출범시기로 봐야 된다고 했다면서요.
김원웅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업사업추진위원회 공동 위원장/광복회장 (사진=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제작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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