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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소개

차미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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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5-25 17:08 조회1,4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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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1955, 여성운동가, 교육가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

생애 및 활동사항

   남편이 죽은 뒤 기독교에 입교, 미국인 여선교사를 통하여

선진국의 실정 및 여성의 사회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01년 여선교사의 알선으로 중국 유학의 기회를 얻게 되

, 인천에서 떠나는 중국 화물선에 몸을 숨겨 상하이로 출 국한 뒤 쑤저우에 있는 버지니아 여학교에 입학하였다.

 

1905년에 졸업하고 양주삼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안창호와 함께 기울어가는 국운을 만회하기 위하여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그 뒤 캔자스 주의 더스칼 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1917년 미국 선교회에서 한국으로 파견하는 선교사 8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귀국하였다. 귀국과 동시에 배화여학교의 교사와 기숙사 사감에 취임하여, 19193·1운동 때에는 국내외 비밀 연락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3·1운동 이후 종교교회에 여자 야학강습소를 설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문맹퇴치와 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

 

1920년 조선여자교육협회를 조직하고, 이듬해 순회여자강연단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계몽강연을 실시하였다. 이때 4개월간 73개소에서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웠으며, 192110월 강연회에서 얻은 찬조금으로 근화여학교를 설립, 교장에 취임하였다. 19342월 안국동에 재단법인 근화학원을 설립하여 재단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그 뒤 근화라는 명칭이 무궁화를 상징한다는 일제의 시비에 따라 명칭을 덕성학원으로 바꾸었다. 광복이 되자 그 동안 계획해 왔던 여성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추진, 1950년 덕성여자초급대학(현재의 덕성여자대학교)을 설립하였고, 그 뒤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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