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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소개

조명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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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5-25 15:26 조회1,5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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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928,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생애 및 활동사항 

     19263월 신천군청의 직원으로 고용되어 일하면서 같은 황해도 출신의 김구 선생과 노백린 선생 등 독립운동 선각자들의 무용담을 전해 듣고 애국남아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여중구 등 친구 6명이 마련해 준 여비를 받아 웅지를 품고 고향을 떠났고 항일을 위해서는 우선 일본을 알아야한다.’는 생각에서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에 상륙했다. 오사카에서 공장직원?상점원 등으로 일하면서 오사카상공전문학교 야간부에서 고학했다. 그는 주경야독하던 이 과정에서 일본인의 차별대우와 모욕적 언사를 수없이 당하면서 조국독립의 염원을 굳혀갔다. 그러나 오사카에서는 일본인 수괴를 없앨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기로 마음먹고 일단 타이완으로 향했다. 중국 상하이로 직행하는 것은 일경들의 통제와 감시가 철저해 신분이 노출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로서 비교적 여행이 자유로운 타이완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192711월 타이완에 도착, 타이중시 부귀원이란 찻집에서 매달 10원을 받고 일하면서 일제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타이완 원주민들의 실상을 보게 되었다. 일제는 중국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전진기지인 타이완에서 일본의 산둥성 출병을 준비하고 있었다.

 

검열을 위해 타이중 도서관 앞 사거리 지점에서 일본 육군대장 구니노미야게 단검을 던져서 중상 입게하여 사망하게 하였다. 아수라장이 된 그 자리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고 일본 군경들에게 포박을 당하였다.

 

614일 타이페이 형무소에 수감되어 타이완 고등법원 특별공판정에서 소위 황족위해죄와 불경사건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3개월 뒤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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